널리 읽히는 고전문학 속 사춘기의 색깔은 좀 특별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좀 더 몽환적이고 철학적인 보랏빛에 가깝다면,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날 것 그대로의 거친 색채를 담은 짙은 빨간색이다. 이 두 작품은 사춘기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대표적인 고전이다. <데미안>은 세계적인 인기 보이 그룹 BTS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이유로 십 대 청소년들에게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많은 문학 소년과 소녀들이 즐겨 읽는 고전 중의 고전이었다. 하지만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세계 문호들의 ‘최애 문학’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생각보다 주변에서 완독 했다는 이는 찾기 힘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성적 부진으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뉴욕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은 2박 3일간의 일들을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낸 성장 소설이다.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당시 대학생들이 누구나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 다니며 소설 속 주인공 홀드 콜필드와 자신들을 동일시했다는 ‘샐린저 현상’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 인기는 1950년대 전후 점잖고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미국 사회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의 도발적이고 발칙한 말과 행동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런 열광적인 반응에 비해 작가 J. 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삶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이 한 편의 장편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사생활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작가는 1965년 이후 사회를 떠나 본격적인 은둔을 시작한 이후로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측근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만남이나 교류도 거부했다고 한다.
16세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하지만, 영어를 제외하고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수를 받아 퇴학조치를 당한다. 이번이 4번째 퇴학으로, 그는 ‘가식’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학교사회를 잘 적응하지 못한다. 홀든은 룸메이트와의 우발적인 주먹다짐으로 기숙사를 뛰쳐나와 뉴욕으로 향한다. 그는 ‘성인’인 척 뉴욕의 싸구려 호텔과 술질, 클럽을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홀든은 존경했던 앤톨리니 선생님을 만나 ‘학교 사회’로 다시 돌아가라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선생님의 추악한 면을 발견하고는 경악하며 도망친다. 결국 홀든은 여동생 피비와의 소중한 시간을 통해 깨달음과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이 작품은 독자마다 책에 대한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는 소설이다. 혹자는 이 책은 ‘인생 책’이라고 꼽지만, 어떤 이는 ‘아무리 읽어도 이 책이 왜 고전인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날 것 그대로의 말투와 생각 때문이다. 책에서 주인공은 구속하는 기성세대와 사회를 향해 쉴 새 없는 욕설과 숨김없는 솔직함으로 대응한다. 그는 ‘인생을 시합’이라며 훈계하는 선생님의 발언에 ‘불공평한 인생 출발’을 떠올리는 가하면, 자신을 낙제시킨 선생의 얘기를 ‘지겨운 헛소리’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면 어떠냐’는 여동생 피비의 질문에 그는 그 직업이 “하는 일이라고는 돈을 많이 벌고 골프를 치고 브리지 게임을 하고 차를 사고 마티니를 마시고 거물처럼 보이는” 위선적인 직업이라고 말한다.
시합이라니, 웃기고 있네.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어. 만일 잘 나가는 인간이 모두 모여 있는 편에 들어간다면 그건 시합이지. 아무렴.- 나도 그런 인정할 거다. 하지만 다른 편이라면, 잘 나가는 인간이 전혀 없는 편이라면, 그게 무슨 시합인가? 아무것도 아니지. 시합이 아니다.(p.20)
“변호사는 괜찮아, 내 생각으로는-하지만 나한테는 그게 매력이 없어. 그러니까 늘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이나 그런 걸 구해주고 돌아다니거나 그러면 괜찮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야. 하는 일이라고는 돈을 많이 벌고 골프를 치고 브리지 게임을 하고 차를 사고 마티니를 마시고 거물처럼 보이는 거뿐이야.”(p.258)
홀든이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은 기성세대가 인정하는 ‘변호사’나 ‘과학자’가 아니라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그는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도 않고 마구 달”려 “절벽을 넘어가려” 할 때 아이들을 모두 붙잡아 주는 ‘파수군’이 되고 싶어 한다. 홀든 역시 그 노릇이 “미쳤다”라고 표현하지만 “진짜로 되고 싶은 유일한 거”라고 토로한다. 그의 절절한 고백 속에는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동시에 혼란스러운 성장통으로 흔들리는 본인을 붙잡아 주기를 원하는 속내가 숨어 있다.
"나는 그 모든 어린 꼬마들이 호밀밭이나 그런 커다란 밭에서 어떤 놀이를 하는 모습을 계속 그려 봐. 어린 꼬마 수천 명, 주위에 아무도 없고-그러니까 어른은 없고- 나를 빼면.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친 절벽 가장자리에 서있어. 만일 꼬마들이 절벽을 넘어가려 하면 내가 모두 붙잡아야 해-그러니까 꼬마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도 않고 마구 달리면 내가 어딘가에서 나가 꼬마를 붙잡는 거야. 그게 내가 온종일 하는 일이야. 나는 그냥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그런 노릇을 하는 거지. 나도 그게 미쳤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게 내가 진짜로 되고 싶은 유일한 거야. 나도 그게 미쳤다는 거 알아.”
홀든이 본 어른들의 세계는 강압적이고 위선적이며 때로는 추악하다. 여동생 피비는 홀든이 기존의 세계를 벗어나거나 조금씩 그의 속내를 털어놓을 때마다 “아빠가 오빠를 죽일 거야!”(p.248)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이처럼, 스펜서 선생님, 앤톨리지 선생님, 아버지와 같이 홀든이 만난 어른들은 소년이 기존의 체계를 벗어날 때마다 ‘인생의 규칙’을 운운하며 훈계하거나 충고하며 때로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어른을 꿈꾸고 회전목마를 조용히 지켜봐 주는 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가 원하는 보호자는 여동생 피비가 회전목마를 탈 때처럼, “좀 걱정되었지만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인물이다. 소년이 “황금 고리를 잡고 싶어 하면 그렇게 하게 놔두고” “떨어지면 떨어지”더라도 도전하며 실패하며 본인의 가능성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 그런 이가 바로 홀든이 진정으로 되고 싶고 만나길 원하는 어른이다.
회전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가 빙빙 도는 것을 지켜보았다. 목마를 탄 다른 아이는 대여섯 명밖에 안 되었고 회전목마에서 나오는 노래는 <당신 눈에 연기가>였다. 완전 재즈풍으로 웃기게 연주하고 있었다. 꼬마들 모두 계속 황금 고리를 잡으려 했고 우리의 피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러다 아이가 빌어먹을 말에서 떨어질까 봐 좀 걱정되었지만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꼬마에게 중요한 거, 꼬마들이 황금 고리를 잡고 싶어 하면 그렇게 하게 놔두고 아무 말하지 말아야 한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다. 꼬마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 나쁘다.(p.313)
<호밀밭의 파수꾼>은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담은 작품이다. 하지만 청소년들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이 읽기에 더 적합한 소설이다. 당신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성장통을 앓던 시절, 어떤 어른을 만나고 싶었나? 지나간 본인 사춘기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싶은 어른들, 혹은 사춘기 아이들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이해하고 싶은 성인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