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평범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앞뒤 재가면서 기어라 하면 기고 서라 하면 서고 눈물 흘리라 하면 흘리고…. 눈을 부릅뜨다가 뺨따귀 하나 더 맞는 것이 얼마나 바보짓인가 그걸 깨달았소.”(p.212)<토지>(박경리, 마로니에 북스)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는 열혈 청년 홍이는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했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의 그는 본인이 믿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한 몸쯤 바칠 수 있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용기를 내 외쳐도 들어줄 조국이 없고,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들 그저 제 몸만 상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변했다. 부당한 일을 보아도 못 본 척했고, 그저 그 순간을 무사히 넘기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공익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헌신을 바칠 수 있는 이들은 얼마만큼의 용기를 지니고 있을까? 부당함과 억울함을 마주할 때 용기를 내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정의롭지 않은 상황을 보더라도 모른 척, 못 본 척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런 이들을 마냥 비겁하다고 욕할 수만은 없다. 용기도 어느 정도 힘이 갖추어질 때,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사회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실낱같은 용기라도 내어 볼 수 있다.
올해 추석 연휴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영화 한 편을 추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바로 <무도실무관>이다. 이 영화는 보호관찰관과 함께 전자발찌를 착용한 범죄자를 관리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무도실무관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내용에 왜 그렇게 나라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연유를 살펴보면 무척 흥미롭다. <무도실무관>에는 태권도 3단, 검도 3단, 유도 3단인 청년 ‘정도’가 등장한다. 이 젊은이는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무도실무관 일을 맡게 되지만, 점점 사회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변한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무도실무관>을 “공익을 추구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그린 이런 영화를 젊은 세대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추천했다고 했다. 그리고 또한 “MZ세대의 공공의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을 상기시키는 영화”(출처: 조선일보, 2024.0924. 박선민 기자)라고 평했다고 전했다.
같은 영화를 봐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탓일 것이다. 소시민인 나는 주인공 ‘정도’ 역을 맡은 김우빈 배우의 시원한 미소가 좋아서, ‘무도실무관’이라는 생소한 제목에 끌려서 OTT PLAY 버튼을 신나게 눌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영화의 내용에 끝까지 집중하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이 영화의 처음 시작은 흥미로운 코미디였지만, 강력한 아동 성범죄자가 등장하는 중반부부터는 재빨리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공포물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여서 영화 속에서 성범죄자가 그려내는 범죄 현장들이 더 끔찍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성장한 아들들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그런 범죄들이 무섭게 다가왔는데, 어린 딸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이런 일들이 얼마나 끔찍할까?
주인공 정도는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무도실무관 일을 그저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과 인력 부족으로 범죄자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접하고 해결하면서 점점 이 청년은 정의로운 용자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출중한 무예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만을 즐기던 한 젊은이가 사회악에 대항해 공공의 질서를 지키려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큰 사고를 당한다. 그런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전자발찌를 단 흉악범 따위는 “경찰에 맡기라”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간곡한 만류에도 정도는 “내가 다 아는데 어떻게 가만있어?”라고 반문한다. 그의 이런 행동이 ‘내가 해야 한다’는 투철한 정의감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도 엿보인다. 정도의 마음속에는 기다리고 있으면 공권력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 따위는 없어 보인다. 결국 영화는 이런 청년들이 알아서 헌신하고 공권력이 해결해야 할 일들을 맡아주었기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울 나라님은 정도와 같은 젊은 청년이 경찰보다 먼저 험악한 범죄자를 용기 내 맞서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기특해 <무도실무관>을 추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상황을 실제로 마주 대해야 하는 시민으로서는 두렵기만 하다. 영화를 본 이후에도 ‘혹시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계속 불안해하며 몸서리를 쳤을 만큼 말이다. 대통령은 주인공 정도의 정의감과 헌신을 높이 평가하며 이 영화를 젊은 세대들이 많이 시청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 이유는 이미 많은 세월을 보낸 연장자가 미래 세대인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는 훈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젊은 세대들의 공익에 대한 희생을 운운하기보다는 이 영화를 좀 더 다른 이유로 추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의 사소한 말 한마디는 대한민국 그 누구의 언어보다는 크고 세다. 공권력의 최고 책임자가 영화를 보고 이렇게 추천 이유를 밝힌다는 것은 실낱같은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 일이다. 혹 우리나라 공권력의 현실이 정도와 같은 청년들을 원할 정도로 심각할 상황일지 과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나라님의 의도는 이런 의미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불의 앞에서 사람들이 침묵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힘이 없을 때, 아무리 용을 써도 바뀌지 않을 때, 실낱같은 용기도 쥐어짤 수가 없다. <무도실무관>의 정도가 만일 무예 유단자가 아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이 영화처럼 호쾌한 결말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대통령의 추천사가 빛나려면, 정도와 같은 젊은 세대의 헌신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는 평범한 무도실무관의 노고가 더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범죄자들의 재발을 막기 위한 사회체제를 더 공고히 하는 지도자의 약속이 더 필요할 것이다.
알지만 참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대개 힘이 없다. 안타까운 상황 앞에서도 지켜야 하는 소중한 사람들, 가족들을 위해 참는 이들이다. 범죄자들을 소시민들의 노력에 기대는 일보다는 사회안전망이 더 강하게 구축되었으면 좋겠다.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고,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에서는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들이 필요 없다. 영웅들도 평범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체제, 그런 사회는 어디쯤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