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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16. 2024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는 한강 작가가 보고 싶다.

 한강 작가가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차지하면서 2024년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한동안 독서와 거리가 멀었던 대한민국 성인들이 그녀의 책들을 구매하느라 난리이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당일에는 ‘예스 24’와 ‘알라딘’과 같은 온라인 서점의 서버가 한동안 마비되며 작가를 향한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실감케 했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이라는 빛나는 여운에만 젖어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제대로 역사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동안 각 정권의 힘겨루기 속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역사의 상흔들이 어둠 속에서 곪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를 향한 대중들의 찬사와 관심들이 조금 진정이 되자, 보수우익 세력의 사람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이 강렬하게 비판하는 주된 내용은 작가의 작품들이 모두 ‘역사의 왜곡’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조선일보에 ‘소설 같은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는 김규나 작가는 10일 페이스북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노벨상) 수상 작가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중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역시 11일 페이스북에 “잘못된 역사 왜곡으로 쓴 소설로 받은 노벨상이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동안 한강 작가가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작품세계는 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과 폭력성, 숨기고 싶은 역사의 비극이다. 5.18 광주 항생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 가족애의 끔찍한 이면을 그린 ‘채식주의자’와 같은 작품들은 독자들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 그리고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을 혁신”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을 평범한 독자들이 깨닫기는 쉽지 않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타고 난 후의 일이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았다는 호기심에 지금처럼 독자들이 너도나도 이 책을 읽는 유행이 불었다. 몇 년째 유지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접근하던 사람들은 점점 기대와 다른 이야기에 점점 침울해지고 결국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각인된 폭력의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의 이야기는 혼란 속에서도 억지로 평안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너무도 어려운 작품이었다.


 생각해 보면 작가가 다루는 이야기는 모두 대한민국 세상의 어두운 면이다. 그녀는 애써 포장하지도 미화시키지도 않는다. 때로는 죽은 소년의 시선으로, 때로는 여성의 눈으로 대한민국의 어둠을 들여다본다. 작가는 절대로 세상의 시선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맞서며 그녀의 길만을 갈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뚝심이, 그리고 그런 용기가 부럽고 거북하다. 온갖 폭력과 치유해야 할 상처가 가득한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대한민국 역사가 숨겨온 이들이다.


 이런 한강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심진경 문학평론가는 한겨레 기고 글(2024.10.15.)에서 “모두 모종의 고통과 마주한 민감하고 연약한 개인이 고통을 통해 고통받는 존재들과 깊이 교감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며 “고통을 이야기 끝까지 밀어붙여 기어이 고통의 윤리에 도달”하는 “고통 3부작”의 3부작이라 불렀다. 또한 평론가는 한강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글쓰기란 불가피한 고통을 무릅쓰고 끔찍한 고통의 한가운데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고통스럽지만 역시 쓸 수밖에 없는 한강 작가의 사명감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런 점을 요약할 때 한강 작가 글쓰기는 한국 사회의 어두움을 끈질기게 탐구하며 연약한 개인들의 고통을 함께 교감하며 그 그늘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작업이다.


 작가라면 으레 그녀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삶을 쓰고 있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기도 하다. 5.18 광주 항쟁에 관련된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상처가 아물고, 대한민국의 모든 폭력과 어두운 면들이 지혜롭게 해결되어 21세기 한국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의 평범한 삶을 묘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많은 곳에 갈등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K-즐거움이 아니라 K-어두움, K-비극적인 역사로 알려지는 우리네 현실은 비참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렇게 드러내고 알려져야 묵힌 상처는 치유되는 법이다.


 용기를 내 고통스러운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작가에게 적어도 돌팔매는 던지지 말자. 아무리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역사 왜곡’이니 ‘거짓’이라고 비방을 해도 진실의 화석들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아직 수많은 피와 주검들이 덮인 역사는 우리들의 무관심과 체념 속에 묻혀 있지만, 역사의 진실을 찾는 사람들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갈등 속에서 그 고통을 그대로 직시하는 작가의 용기가 부럽다. 어쩌면 이런 작가가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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