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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5. 2024

하마 엄마가 ‘우리 사회의 코끼리’를 꺼내는 방법

 서양의 속담 ‘방 안의 코끼리’는 섣불리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크고 무거운 문제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 표현은 누구나 방 안에 코끼리가 있는 상황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괜히 말을 꺼냈다가 대다수의 비난에 휩싸일지 두려워 모른 척하는 상황에서 사용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수많은 불공평한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어 우리 사회의 ‘코끼리’를 외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공평과 나눔을 원하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해결하기가 무척 어렵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돋보이는 홍콩작가 량야이의 <하마 엄마가 팬케이크를 나누는 법>(보랏빛소어린이, 2022)은 “하마 엄마가 따끈따끈한 팬케이크를 구웠어요. (..) 숲속 동물들과 두루두루 나누어 먹을 거예요.”라는 첫 장으로 시작된다. 출판사는 이 책을 '나눔과 공정함을 배우는 예쁜 그림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팬케이크를 나누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하마 엄마의 고민은 다양한 동물들의 등장과 함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간다.

  마음씨 좋은 하마 엄마는 아주 먹음직한 팬케이크를 구워 숲 속 동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다. 그녀는 그냥 가져가라고 하면 이런저런 혼란이 생길까 두려워 차례차례 줄을 서서 받아 가라는 규칙을 정한다. 하지만 하마 엄마의 의도와는 달리, 약삭빠른 몇몇 동물들이 여러 번 줄을 서는 바람에 팬케이크는 금방 동이 난다. 그녀는 한 번만 줄을 설 수 있다는 또 다른 규칙을 보태어 팬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집에 있는 가족들의 몫까지 대신 챙겨가는 경우들이 생겨 케이크는 또다시 몇몇 동물의 차지가 된다. 이번에도 팬케이크를 못 받은 동물 친구들은 무척 분노하며 불평을 터뜨린다. 이에 하마 엄마는 많은 동물들에 팬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여러 규칙을 바꾸고 보태지만, 별소용이 없다. 결국 화가 난 그녀는 팬케이크 나눔을 멈추고 잠적한다. 그리고 며칠 뒤 하마 엄마는 모든 동물이 흡족할 만한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데….


  모든 동물이 팬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기를 바라는 하마 엄마의 마음은 결말 속 새로운 규칙과 함께 행복하게 해결된 듯 보인다. 그녀가 만든 새로운 규칙은 '자기 몫의 팬케이크는 자기가 알아서 만들어 먹기'이다.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알려주는 밝은 면에만 초점을 준다면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꽤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과 접목해도 과연 그럴까?


 실제로 고등학생들과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독서토론을 진행하기 전에 이 그림책을 징검다리 도서로 이용했을 때의 일이다. 작품을 모두 읽은 후 하마 엄마의 새로운 규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학생들은 큰 고민 없이 마지막 부분이 공정하고 괜찮은 결론이라는 듯 고개를 저마다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시 질문을 바꿔 보았다. "만일 이 규칙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2가지만 생각해 볼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아이들은 그림책을 다시 들여다보며 신체 조건과 능력이 다른 동물들이 만들어 낼 팬케이크 결과물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쏟아냈다. '하마 엄마의 요리 도구를 집을 수 없는 개미와 같은 작은 동물들은 요리가 힘들 것 같네요.', '모두가 하마 엄마와 같은 요리 솜씨가 없으니, 맛이 균일하지 않을 것 같아요'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진리, '능력에 따라 자기 몫을 챙기기'라는 원칙을 없애고 나니, 학생들은 또 다른 문제점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정치 철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사회에서 만연한 '능력주의'를 꼬집으며 우리 현대인들은 '능력주의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능력에 따라 지금의 성공이 이루어졌다'라는 생각과 '원하는 데로 이룰 수 있다'라는 믿음이 지금과 같은 불평등 사회를 이루었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이 실제로 미국민들에게 불공평의 족쇄를 채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능력주의의 폭정에 갇혀 있다고 언급한다. 어쩌면 능력대로, 원하는 데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에게 지독한 희망 고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출발선은 처음부터 똑같지 않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발표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보고서는 대한민국의 입시경쟁이 사교육 부담, 저출생, 수도권 인구집중, 집값 상승 등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상위권대의 신입생을 지역별 학생 수에 비례해서 뽑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 내용에 대해 취임 2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해법에 있어서는 사회적 논의가 상당히 진전돼야 한다"라고 말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역에 따라 교육 불평등, 사회 불평등이 일어나는 문제에는 무척 공감하지만, 한국은행의 문제 해결 방식에는 바로 ‘동의하기 어렵다’로 해석이 된다.


 겉으로는 같은 조건으로 공정하게 본인의 능력으로 시험을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출발점부터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서 지금의 위치에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을 뿐이다. 마이클 샌델 역시, 이점을 강조하며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 갇힌 ‘코끼리’는 어떻게 꺼내야 할까? 하마 엄마의 태도와 마음에서 그 해결점을 찾는다. 본인의 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헤아리며 규칙들을 여러 번 고치려는 노력, 모두가 공정하게 혜택을 나누려는 진심이야말로, 공평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본인에게 주어진 혜택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나만 잘 먹고 잘살기보다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최소한의 관심과 노력을 보태는 것, 이것이 온갖 사회 불평등 사회 속에서 기후 재앙, 지방소멸, 전쟁과 같은 온갖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들이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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