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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하늘에서 내려온 파이를 얻게 되는 일, 민주주의 개혁”

by 하늘진주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여러모로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과 경각심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이 일에 관해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의 1장에서 “바야흐로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다”라며 당시 미국의 혼란스러운 민주주의 상황을 설명했다. 샌델 교수는 미국인들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이 당선이 ‘자신의 나라에서 소수자로 밀려났다’라고 여기는 백인 남성 노동계급의 분노와 미국 사회에 도사린 능력주의 폐단 때문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샌델 교수와는 달리,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렉은 트럼프를 비롯해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갈 수 있었을지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그들은 미국 정치제도의 문제점과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집중하며 두 권의 정치비평서들을 연달아 펴냈다. 그중 최근작이 바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어크로스, 2024)이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정치,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두 저자들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소수가 지배하는 현재 민주주의 한계를 비판하고 해결할 방안들을 제시한다.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연구한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이다. 특히 그들은 2016년 트럼프 당선 직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썼다. 그 글은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나온 후속작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2021년 1월 선거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을 계기로 집필되었다. 저자들은 “왜 미국은 부유한 기존 민주주의 세상에서 홀로 극단주의를 향해 나아갔던 것인가?”(p.18)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현대 민주주 체제의 모순과 붕괴의 조짐을 고발한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정당의 불안을 다룬 ‘1장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민주주의자들의 형태와 독재 정권이 지속되는 이유들이 언급된 2장 ‘독재의 평범성’은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3장 ‘이 땅에서 벌어진 일’와 ‘4장 왜 공화당은 민주주의를 저버렸나’에서는 미국의 선거 역사와 문화가 상세하게 서술된다. 그리고 ‘5장 족쇄를 찬 다수’, ‘6장 소수의 독재’ 그리고 ‘7장 표준 이하의 민주주의, 미국’에서는 미국 선거인단의 폐해를 비판하며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정권을 가질 수 있는 배경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장, ‘8장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다’는 저자들이 제안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략과 방향성들이 서술된다.


저자들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규범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p.29)라고 주장한다. 이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배경에는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있다.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정치학자 후안 린츠가 명명한 ‘충직한 민주주의자(loyal democrat)’라고 부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승패를 떠나 자유롭게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하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p.63)을 거부하는 인물이라면,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p.64) 인물이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가 이어진 2020년 11월~2021년 1월 동안 도널드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은 “선거 패배에 대한 인정을 거부”(p.192)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 폭동’을 묵인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렀다. 이런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수록 민주주의는 도태될 확률이 높다.


책에 따르면, 소수의 입장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낡은 정치 체제 역시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저자들은 과거 노예 소유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도입된 반다수결주의의 산물인 의회 구성과 선거인단 제도는 더 이상 현재 상황과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다수의 지배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어야”(p.203)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은 주들이 과잉 대표권을 행사”(p.254)하는 선거인단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필리버스터 역시 “정치적 소수가 ‘계속해서’ 거대 다수를 이기거나 정책을 강요”(p.247)할 경우 혼란이 가중될 수 있는 제도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의 지배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p.203)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한 소수의 편을 들어주는 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을 개정하여 정치제도를 바꾸는 능동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요지이다. 관습적으로 따르는 민주주의 제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민주주의는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왜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돌아보고 불안한 정치제도에 대해 새로운 청사진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공저자들의 비판이 공화당에 집중되어 있어 중립적으로 미국 현실을 가늠하기 어렵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몰락을 서술하며 마무리한 말미의 내용은 2025년 미국 정치 상황과 맞지 않아 아쉬운 점이다. 또한 미국 정치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미국 선거인단의 역사와 정치제도를 상세히 설명한 장들을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저자들은 이상적인 민주주의 개혁이 “하늘에서 내려온 파이”(p.342)를 얻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침묵하지 않고 소리 내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계엄과 불복이라는 반민주적인 상황이 벌어진 덕분에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의 회복은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불안한 현 정치 시국에서 새로운 혜안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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