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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6. 2023

나만의 키오스크

 사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다르다. 요즘 수능시험을 치르고 거의 ‘백수 생활’을 하는 고3 큰 애는 음악을 듣고 핸드폰 게임을 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공부를 싫어하는 고1 둘째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유튜브 게임 영상을 보며 즐거움에 빠진다. 일을 하며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남편은 자기 전에 기울이는 초록빛 병의 소주 한잔에 세상의 시름을 잊는다. 즐거움은 곧 하루의 고단함과 피로함을 잊게 하는 마법이자 또 다른 하루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희망의 단어다. 하루의 모든 시간이 이런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하루가 신명 나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살아가는 시간은 재미가 없을 때가 더 많다. 특히 ‘공부’, ‘일’처럼 해야 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은 이상하게 지루하고 답답하다. 그 일터가 좁고 작은 상자 속의 공간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아네테 멜레세의 그림책 <키오스크>에 나오는 올가는 참 신기한 여인이다. 그녀는 절대로 키오스크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오직 그 공간의 작은 창문으로만 세상과 소통한다. 이 책에 나오는 ‘키오스크’는 주문을 자동으로 편리하게 하는 무인 단말기가 아니라 ‘신문, 음료 등을 파는 매점’이다. 주인공 올가는 이 작은 매점에서 먹고 자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녀가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괴로움 등 모든 감정은 몸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이곳에서 느끼는 것이 전부다. 한 평 남짓한 좁고 작은 이 공간은 올가의 하나뿐인 일터이자 인생이나 다름없다. 올가는 오직 거리 한 편에 자리 잡은 키오스크의 작은 창문 속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세상을 배웠다. 그런 세상이 갑자기 뒤집혔다.

 처음 시작은 평소보다 멀리 떨어진 신문 뭉치였다. 올가는 그 신문 뭉치를 안으로 들여놓으려다 그만 키오스크와 함께 ‘꽈당’하고 넘어져 버렸다. 그 순간 그녀는 키오스크와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올가는 이 사실을 알자마자 즐거움을 느끼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힌다. 산책하는 개의 목줄에 걸려 강에 떨어진 것이다. 올가는 이참에 멀리멀리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그곳에서 올가는 키오스크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올가는 왜 이토록 키오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키오스크의 문을 열고 한 발짝만 나서면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에게 무척 쉬운 일이 올가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키오스크’에서 즐거움을 누리기를 원했고, 먹고 자고 일하는 일과 같은 모든 일이 키오스크에서 해결되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 키오스크는 올가에게 단순한 일터이자 집이 아니라 지루한 세상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의 눈에는 그녀를 속박하고 힘들게 보이는 초라한 멍에일지 몰라도 올가에게만은 넘어져도, 강물에 빠져도 꼭 지니고 가고 싶은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올가를 보며 나의 즐거움, 소중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스트레스를 받고 모든 것이 암담해 보일 때 꼭 붙들고서 지니고 가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역시 글쓰기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특출 나게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혼자만의 고독한 구석 공간에 앉아서 끄적이는 이 활동이 너무 즐겁다. 어떨 때는 고독한 글쓰기가 너무도 외롭고 나만의 ‘키오스크’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다가도, 세상의 힘듦이 나를 누를 때면 항상 이곳이 생각난다. 올가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남들 눈에는 그저 초라해 보이고 작은 ‘키오스크’지만, 이 공간은 올가가 세상이 무너져도 무조건 짊어지고 가고 싶은 공간일 것이다. 올가가 ‘키오스크’에서 웃고 울고 즐겼던 것처럼, 나 역시도 나만의 글쓰기 공간에서 웃고 울고 즐기고 싶다. 즐거움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얻을 때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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