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후 맞이하는 100일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100일을 기점으로 밤낮 구분이 없던 아이는 밤에도 긴 잠을 자고 잦은 병치레도 덜 한다. 엄마는 무사히 그 기간을 잘 견뎌온 아이를 위해 하얀 백설기로 상을 차리고 가족들과 떡을 나눠 먹는다. 그러면서 마음 깊이 소원을 빈다. 그저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100일은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도 감사한 기적의 날이다. 아이는 100일을 기점으로 점점 급격하게 성장한다. 돌이 지나고 걷기 시작하며 학교에 진학한다. 그 속에서 여러 경험을 하며 점점 더 크게 성장한다. 그렇게 아주 옛날에 100일을 치렀던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20세의 어엿한 성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 100일의 기다림 이후에 생겨난 기적들이다.
드디어 100일 글쓰기 마지막 날이다. 이렇게 완주 일을 맞이하고 보니 갓 태어난 아이들을 키우며 지냈던 지난 100일간의 기억들이 생각난다. 울며불며 아이들을 키우며 힘겨웠던 지난 시간과 100일 동안 혼자만의 고독을 감내하며 글 쓰는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아이들을 키우는 100일간의 시간은 무조건 해 내야만 하는 일이었고, 100일 글쓰기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100일을 기점으로 변화의 시작점과 마음의 변화가 될 수 있는 것은 똑같았다.
올해 9월 11일에 시작해서 오늘 12월 19일까지 참 많은 고비와 게으름과 싸우며 도달한 100일 글쓰기였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매일 글을 쓴 적이 있었을까?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의 글쓰기는 어쩌다 생각나는 일처럼 쉬엄쉬엄 취미처럼 글을 쓰는 활동이었다. 매일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고, 하루하루 글 소재를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그저 글이 쓰고 싶을 때만 썼고 글을 쓰는 활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았다. 단지 글을 계속 못 쓰고 있는 나에게만 화가 났을 뿐이었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렇게 강제로나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글쓰기는 참 이상하다. 100일 글쓰기를 하기 전에는 꼭 써야 할 이유가 있을 때나 비상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을 때만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전에는 글쓰기가 무척 신비롭고 거창해 보였다. 그래서 ‘매일 쓰고’, ‘시간이 날 때마다 쓰고’, ‘무조건 쓰라’라고 말하는 책 속 작가들의 말이 이상하게만 들렸다. 글쓰기도 엄연히 머리를 쓰는 일이니, 쉬엄쉬엄 두뇌에 휴식을 주면서 생각이 떠오를 때만 쓰는 활동인 줄만 알았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도 긴 학기 이후에는 방학이 있고, 직장인에게도 엄연히 여름휴가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글을 쓰기 전에 영감이 ‘턱’하고 떠오르기를, 좋은 소재가 나타나기만을 항상 기다렸다. 커다란 돌을 앞에 두고 부처님을 구상하는 조각가처럼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글쓰기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글쓰기는 그런 기발한 영감보다는 꾸준히 앉아서 쓸 수 있는 엉덩이 힘이 중요한 활동이었다.
글쓰기는 하루라도 몇 자라도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단어라도 당장 써야 이후에 좀 더 나은 문장으로 바꿀 수 있었다. 초고는 그저 쓸어서 버리거나 끌어모아야 할 낙엽일 뿐이었다. 이 낙엽으로 장작을 태워 고구마를 먹든, 고기를 구워 먹든, 그건 일단 낙엽을 모으고 난 뒤 생각할 일이었다. 앉아서 떠오르지 않는 영감을 기다리다 아무 글을 쓰지 않으면 점점 멀어지는 일이 바로 글쓰기였다.
100일 글쓰기를 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글쓰기에 대한 겸손이다. 100일 글쓰기를 하기 전에는 조금만 시간을 들여 글을 쓰면 당장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만큼 글쓰기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글을 쓰는 일 역시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얼마간의 유명세며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혼녀였던 조앤 롤링도 매일 꾸준히 글을 쓰다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글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유명인들도 작가로 쉽게 변모하는 세상이었다.
그저 너무도 쉬워 보였던 글쓰기 과정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중요한 단계가 빠져 있었다. 바로 끊임없이 쓰는 노력이다. 글쓰기는 시작은 쉬워도 원하는 목표까지 나아가기는 정말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매일 쏟아지는 유혹과 방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무조건 글쓰기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 생각이 안 나도 매일 글쓰기는 무조건 지속되어야 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오직 나만을 위해서 말이다. 글쓰기는 순수하게 나와의 싸움이었다. 이렇게 100일 글쓰기 시간을 채우고 나니 이제야 왜 숱한 작가들이 매일 글쓰기를 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매일 몇 분이라도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하라고 했던 조언에는 그들의 피맺힌 경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나 추앙받고 흠모하는 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나 역시도 100일 글쓰기를 하며 썼던 글들이 온전히 맘에 든 적은 별로 없었다.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내 예측과 달랐다. 오랜 시간을 들이고 고심해서 썼던 글들은 오히려 관심을 받지 못했고, 힘을 빼고 생각의 흐름대로 썼던 글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100일 글쓰기를 하지 않고 드문드문 글을 남겼다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성찰이다. 100일 글쓰기를 하며 글쓰기 기복도 많이 겪었다. 어떤 날은 너무 머리가 아파 글을 쓸 수 없었고, 어떤 날은 이상할 정도로 글이 잘 써졌다. 이 또한 100일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이다.
100일 글쓰기를 마치며, ‘겸손’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콕 담아둔다. 언제나 좋은 글을 쓸 수 없고, 또 언제나 좋지 않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인생지사 새옹지마’처럼 오랜 시간 고민하며 쓴 글이 꼭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이 아니요, 깊은 고민 없이 술술 쉽게 쓴 글이 외면당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쓰는 마음이요, 지속하는 노력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쓰다 보면 ‘멋진 쓰는 인간’으로 탄생할 수 있다. 100일을 기점으로 아이들이 점점 자라나 성인의 문턱으로 성장한 것처럼, 나 역시도 좀 더 성장한 ‘쓰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3년 100일 글쓰기 마지막 날,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