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엄마로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5월의 봄이다.
2년 전, 큰 애가 고3 시절에는 아들을 볼 때마다 참 애가 타고 안타깝고 마음 한쪽이 찌르르 울리는 말랑한 감성을 가진 엄마였다. 공부도 꽤 하고, 무엇보다 찾아서 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기특한 큰 애 탓에, 그야말로 ‘모범적이고 자상한’ 엄마처럼, “너무 열심히 안 해도 돼, 네가 어디를 가든 다 응원할 거야.”라는 따뜻한 격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주말이면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겠다는 아들에게 “오늘은 좀 쉬어.”라는 말을 편하게 내뱉을 수 있다. 고3인 큰애를 볼 때마다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25년 나는 또다시 둘째의 고3 엄마가 되었다. 올해는 둘째를 볼 때마다 화병이 난 것처럼 답답한 응어리가 치밀어 오른다. “너무 열심히 안 해도 돼”라는 말을 절대로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혹시라도 그 말을 했다가는 아들이 정말 공부를 안 할 것 같아 두려워서다. 그렇다. 둘째는 본인이 고3인데도 공부를 안 한다. 아니 안 해도 너무 안 한다! 어젯밤, 5월에 치른 동생의 모의고사를 분석하던 큰 애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어머니, 이 녀석은 절! 대로! 정시로는 어렵겠습니다. 그냥 포기하시죠.” 이제는 애틋한 눈물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답답한 속앓이만 하는 시절이 왔다.
이번 주말에는 올해 수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6월 모의고사를 앞두고도 온종일 핸드폰 게임과 유튜브 게임 방송만을 보고 있는 둘째를 보다 못해 분노에 찬 손길로 빨래했다. ‘고3님’에게 직접적으로는 화를 내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올해의 감정표출 방식이다. 화가 실린 내 발길 닿는 곳마다 ‘쿵쿵, 쾅쾅’ 다양한 소음들이 따라다녔다. 딱딱하게 굳은 엄마의 표정을 숨죽이며 바라보던 둘째가 게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오겠다며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올해 수능까지 7개월, 수시 원서를 쓰기까지 4개월 남짓의 시간만 남았다. 이미 정시를 치러본 큰 애가 동생은 ‘정시가 어렵다’라고 분석했으니, 아마도 3개의 정시 카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둘째가 도전할 수 있는 대학 입학의 기회는 수시 원서 6장이 전부일 것이다. 그나마도 현재로선 원하는 대학으로 갈 수 있을지는 너무도 애매한 내신이다. 이제 한 번의 1학기 기말고사의 결과를 합해 앞으로 수시 원서 쓸 대학을 가늠해야 할 터인데, 정작 당사자인 그 녀석은 이런 비장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고3이라면 으레 떠올리는 ‘피폐한 얼굴, 절실함, 치열함’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절실함! 이 감정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을 만큼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를 말한다. 기성세대들은 아무리 힘든 상황, 다시 일어나기 힘든 상태라도 ‘절실함’이라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들 믿는다. ‘개천에서 용 나고’, 주변에서 ‘나보다 못하는 아이들’이 심기일전 공부하여 좋은 대학들을 쏙쏙 갔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탓이다. 실제로 그렇게 간 친구들을 본 적도 없건만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절실함의 의인화는 대학입시의 ‘만능열쇠’가 되고 있다. “너에게는 절실함이 없어. 지금 잠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데, 왜 그걸 못하니?”라는 말이, 몇십 년 전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부모의 잔소리가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까닭이다.
솔직히 그토록 볼 수 없었던 그놈의 절실함이 어떻게 해야 아들에게 생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부모들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몇 마디 퍼붓는 들 지금까지 공부를 안 했던 아이들에게 절실함이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흐릿한 신기루를 붙잡고서라도 아이들의 안락한 미래를 꿈꾸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지 못했던 나의 고3 시절에 대한 후회다.
몇십 년을 보내고 보니, 그때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었음이 절실히 느껴진다. 그때 힘들어서 포기했던 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고3인 내가 안타까워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그 마음은 도돌이표처럼 자꾸만 둘째에게 투영된다. 절실하게 보내지 못했던 시절의 흔적들은 현재의 시간을 더욱 채찍질한다. 듬성듬성 비어 있는 열정의 시간, 30년이 지난 후에야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메꾸고 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은 아무리 말해도 그 녀석은 알 수 없겠지?
그래, 둘째도 본인과 똑같은 애를 만나면 나의 이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지금 내가 나랑 똑같은 아들을 보며 복잡한 감정들이 오가는 것처럼. 이 녀석의 절실함도 역시 30년 뒤에나 찾을 수 있으려나? 심란한 나의 고3 엄마 시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