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구석, 먼지를 뒤집어쓴 손목시계를 꺼내 들었다. 까만 플라스틱 테두리, 하얀 시계판 한가운데 은빛 원이 조용히 빛났다. 두 해 전, 큰아들이 고3이 되던 해에 내 손으로 사 준 시계다. 까맣고 단정한 선이 꼭 까마귀 한 마리의 윤곽 같다. 고3 시절 아들은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이 시계를 꼭 챙겼다. 수능처럼 긴장하며 시험 시간을 재단하겠다고 했다. 시침이 한 칸 움직일 때마다 그 애의 심장도 따라 떨렸을 것이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면, 내 심장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나 역시 그 시절엔 수험생의 어머니가 아니라, 또 한 명의 수험생이었다. 풀어야 할 일들은 산더미였는데, 그해의 시간은 유난히 빠르게 흘렀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그렇게 잔인하게 들린 적이 또 있었을까.
그 까만 수능 시계는 이제 둘째의 차지가 되었다. 큰아들의 손끝을 떠난 시간은 둘째의 느긋한 하루로 옮겨왔다. 수능까지 일주일, 그러나 정작 둘째 녀석은 남일이라는 듯 태연하다. 큰애의 고3 시절이 한 편의 스릴러 영화였다면, 둘째의 고3은 느긋한 일일시트콤이다. 그런 아들 녀석이 공부를 하나 안 하나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다 보면, 엄마인 나도 올해는 그 시트콤의 단골 잔소리꾼 조연이 된다.
둘째는 올해 9월쯤 일찌감치 수시 원서를 냈다. 그 후의 모습은 ‘세상에 저런 고3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태평했다. 수능 최저 점수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녀석은 ‘공부해라’라는 입력이 들어가야만 움직였다. 주말이면 하루의 대부분을 이불속에서 보냈다.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꾸벅꾸벅 졸아댔다.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내 상상은 롤러코스터 위를 내달렸다. 처음엔 ‘저렇게 공부해서 괜찮을까?’라며 맴돌던 생각은 어느새 ‘저래서 뭘 먹고살까?’라는 혼자만의 조바심으로 옮겨갔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앞에서, 나는 온종일 불안에 떨었다.
돌이켜 보면, 눈앞의 결승선에만 매달리느라 그 너머의 풍경을 놓치곤 했다. ‘좋은 대학’, ‘좋은 과’만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 순간, 멈출 수는 없었다. 지나온 후에야 그것이 꼭 맞는 답이 아님을 잘 알지만, 그때의 나는 단 하나의 길밖에 보지 못했다. 지름길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정답보다 오답이 훨씬 많은 시험지 같다. 그것을 깨닫는 건 언제나 한참 지난 뒤다.
2년 전부터 시침을 멈추지 않고 달려온 수능 시계, 그래도 밥은 줘야겠다는 생각에 시계방으로 향했다. 수험생이 쓸 시계라고 하니 시계방 주인은 몸체를 열며 조심스레 약을 갈았다. 약을 갈던 손이 잠시 멈추더니, 그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많이 힘드시죠?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집에 고3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사람들은 으레 안부를 묻는다. “괜찮으시죠?” 조바심 내던 큰애의 고3 시절에는 당연하게 들리던 말이, 둘째의 느긋한 수험생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민망하다. 그 녀석이 나무늘보처럼 책가방만 느릿하게 들고 다녀도, 속으로는 말 못 할 무게가 있겠지. 시계방 아저씨의 손끝을 거친 시계는 다시 배를 채운 듯 또렷이 째깍거렸다. 오늘도 “학교 가기 싫어요.”라며 찡찡거리던 둘째. 그 마음속엔 여전히 고3의 그림자가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일주일 뒤면, 이 시계도 잠시 쉴 수 있을까. 나는 조용히,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