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사는 수원 장안구 정자동의 새벽은 늘 숨 가쁘게 시작된다. 매일 서울로 향하는 경기도 주민이라면, 이 새벽의 분주함을 모를 리 없다. 우겨 타는 지옥철, 만원 버스, 숨이 턱턱 막히는 고속도로의 교통 체증은 매일의 일상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곤함을 몸에 걸친 사람들은 오늘도 버스를 탄다. 서울 근교에 산다는 건,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중심지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늘 남는다.
수원은 본토박이가 아닌 입장에서는 참 애매한 도시다. 갑작스런 남편의 직장 이동으로, 20년째 어설프게 수원 시민 코스프레를 하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어떨 때는 비판적으로, 어떨 때는 감성적으로 이 도시를 바라본다. 서울에서 가까워 날마다 집값이 치솟는 금싸라기 지역도 아니고, 고즈넉한 시골의 운치를 맛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중 수원의 어떤 지역은 ‘광교’와 ‘신분당선’, ‘스타필드’라는 호재로 돈맛을 쏠쏠히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지하철과 가깝거나, 새 아파트를 거머쥔 집주인들의 이야기다. 20년이 넘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교체를 걱정하는 나로서는, 그 모든 게 꿈같은 이야기다.
무던한 나도 수원에 살면서, 더 비싸고 좋은 교육 조건의 도시로 옮길 수 없는 좌절감에 종종 젖는다. 몇 년째 동결된 집값에 대한 두려움도 그 곁에 슬며시 붙어 있다. ‘수원 일반고에 다니면 서울 대학 가기 어렵다’는 말, 이 동네 엄마들 사이에 떠도는 이 망령이 내 마음에도 콕 박혔다. 지방에서 경기도로 이사 오면서 경쟁에 물든 엄마들의 작은 불안에 쉽게 동화되었다. 하지만 이 집을 팔아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좋은 학원들이 몰려 있다는 분당, 평촌, 서울 대치, 수원 영통으로 아이들을 매일 태워다 주는 엄마들을 보며 나는 꾸역꾸역 고3인 둘째를 동네 학원으로만 보냈다. 아들의 실력을 믿기보다는, ‘이 정도면 됐다’라는 체념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발 빠른 동네 엄마들의 정보력 속에서 항상 나는 뒷북을 쳤지만, 이 도시는 그런 느린 나도 따뜻하게 품어줬다.
나는 이 도시가, 이 동네가, 내 아파트가 좋다. 너무 넓지 않아 청소기를 금방 돌리고 쉴 수 있는 집이 좋다. 적당히 게으름을 피워도 크게 표가 나지 않는, 세월의 때가 정겹다.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슬리퍼를 신고 금방 나갈 수 있는 작은 공원은 나만의 영감의 장소다. ‘수원’이라는 이름처럼, 곳곳에 서호천과 만석거, 일월저수지의 푸른 물결이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젊은 기운이 필요할 땐 운동화를 신고, 친구들과 성균관대 수원 캠퍼스를 걷는다. 좋아하는 드라마 촬영지가 있는 행리단길도 정겹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장소들. 터벅터벅 나이 들어가는 나를 지켜봐 주는 이 도시는, 내게 충분히 다정하다.
조선 시대 정조가 이상적인 도시로 꿈꾸었던 수원은 이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품고 있다. 바쁘지만 느린 도시, 화려하지만 소박한 도시, 그 양면성이 공존하는 곳. K-아줌마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고 다정한 동네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