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줌마, 바쁘지만 느린 수원에서 다정함을 배우다
캄캄한 밤하늘의 별무리는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영역 가까이 내려오는 순간, 빛은 주변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수원 도심의 한 오래된 동네에 ‘스타필드’ 시공 소식이 전해지던 날, 조용하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년째 꿈쩍도 않던 집값은 갑자기 들썩였고, 낡은 아파트들은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새 간판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머지않아 들어설 별천지의 위용에 눌리지 않으려는 듯, 건물도 사람도 나름의 체면을 다듬고 있었다. 찬란한 빛이 가까워질수록 숨기고 싶던 결들이 도드라지는데, 모두는 모르는 척 그 욕망을 숨긴 채 개장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스타필드가 옆 동네에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의외로 ‘튼튼한 슬리퍼를 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지하철 주변의 ‘역세권’, 학군 좋은 ‘학세권’보다 더 부러운 건 걸어서 웬만한 기반 시설을 누릴 수 있는 ‘슬세권’ 아니던가. 현관을 막 나온 츄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스타필드를 드나드는 모습은, 비록 뉴요커는 아닐지라도 ‘나는 이 인프라를 일상처럼 쓰는 동네 주민’이라는 묘한 여유의 상징처럼 보였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건널목을 건너고 긴 터널을 지나 빠르게 걸어도 10분, 천천히 가면 20분. 투박한 슬리퍼만 끌고 갈 수 있는 거리는 애매했다. 나의 ‘슬세권 로망’은 그렇게 첫발부터 휘청거렸다.
두 번째 선택지는 ‘스타필드 로고가 선명히 박힌 빨간 장바구니 수레’였다. 개장 직후 며칠 동안 진행된 무료 증정 이벤트는 작은 축제처럼 뜨거웠다. 사람들은 지정된 시간보다 두세 시간 먼저 줄을 섰고, ‘1인 1개’를 위해 친구와 가족, 심지어 오랜만에 연락한 친척까지 불러 모았다. 갑작스레 내려앉은 별천지의 문턱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닿고 싶은 마음에 한겨울의 찬 기운도 잊은 듯했다. 나 역시 그 무리를 서성이며 치열한 경쟁과 끈질긴 인내 끝에 장바구니 하나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에서 장바구니는 ‘바퀴 소리가 요란하고’ ‘끌고 다니기 불편한’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몇 번의 한숨과 함께 끌고 다니던 내 겨울 투쟁의 상징은 결국 집 안 한구석 빨래통으로 조용히 밀려났다.
별다른 사건 없이 조용하던 이 동네에 화려한 ‘별 무리의 땅’이 들어선 일은 조용한 혁명에 가까웠다. 평소에는 차 한 대 보기 힘들던 한적한 도로에 평일이든 주말이든 자동차 행렬이 끝없이 늘어섰다. 그 장면은 묘하게 낯설었다.
‘저렇게 가도 주차장은 이미 만차일 텐데.’
‘그냥 걸어가면 더 마음이 편할 텐데.’
꽉 막힌 도로에 갇혀 꼼짝 못 하는 자동차들은 마치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처럼 보였다. 반대로 나는 걸어서 그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원할 때 멈추고, 쉬고 싶은 곳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이 좋은 차를 몰고 있는 그들보다 더 큰 ‘부’처럼 느껴졌다. 스타필드 옆 동네에 산다는 것, 그리고 그 빛나는 곳을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다는 여유가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나를 ‘부자’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화려한 별무리 뒤편의 진실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슬리퍼를 끌고 스타필드를 가든, 빨간 장바구니를 끌며 활보하든, 그 반짝임은 내 소소한 삶의 결을 단 하나도 바꾸지 못했다. 잠깐 들떴던 기대감이 빠지고 나자 오래된 아파트 값은 다시 조금씩 내려앉았고, ‘슬세권’ 주변 아파트만이 조용히 혜택을 누렸다. 결국, 어설픈 가짜의 허세는 빛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건 동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그 사실 앞에서 조금 씁쓸해졌다.
이런 내 기분과 다르게, 우리 동네의 ‘스타필드’는 여전히 블랙홀처럼 강한 중력을 뿜어낸다. 조용한 동네에 툭 던져진 이 거대한 공간은 저 너머 동네의 ‘몰’을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바꾸어 놓았고, 주변 상권을 쉼 없이 흔들어놓았다. 친구들 역시 동네 카페보다 자연스럽게 스타필드에서 약속을 잡는다. 외부에서는 은빛 돔이 도시를 압도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층층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조가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잡아끈다. 1층보다 2층, 2층보다 3층… 끝없이 위로 오르게 만드는 이 구조는 아래의 어둠과 소음을 잊게 하고, 오직 찬란한 정상만을 바라보게 한다. 개 짖는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뒤섞인 혼잡함 속에서도, 그 별천지의 눈부심은 묘하게 매혹적이다.
그 빛나는 표면 아래 자본주의의 비정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그리고 나 역시—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마음속 작은 욕망들은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 흘린 땀과 노동의 그림자 따위는 순식간에 덮어버린다. 캄캄한 밤 그늘에서 빛을 좇아 날아드는 날벌레처럼, 이곳은 어느새 내 감각을 잠식하고 있다. 그 속에서는 모두가 조금 더 높아 보이고, 더 빛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댄다.
스타필드. 높은 곳을 꿈꾸는 애벌레들이 모여드는, 이 동네의 번쩍이는 쇼핑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