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치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치유의 빛>(강화길, 은행나무, 2025)

by 하늘진주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중략)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마르코 복음 1장, 23~26절>>(p.9)


강화길의 장편소설 <치유의 빛>(은행나무, 2025)은 여러 인물의 시선을 따라 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비춘다. 서늘한 푸른빛의 책 표지 위에 교차된 여인들의 맨발은 이 작품이 여성의 몸을 둘러싼 시선과 그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다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말하는 치유는 ‘빛’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포용이나 위안과는 거리가 멀다. 프롤로그에 앞서 인용된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는 단호한 문장은, 이 작품의 치유가 끌어안기보다 ‘분리’와 ‘결단’의 방식에 가깝다는 점을 드러낸다.


소설가 강화길은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으며 ‘한국형 여성고딕소설’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아 온 작가이다. 그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치유의 빛>은 기이한 존재가 만들어내는 괴리감보다, 폐쇄된 사회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통해 공포를 구축한다. 지방 소도시 ‘안진 영직동’의 긴밀한 마을 공동체와 사이비 종교 단체 ‘조칠현 교회’,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들, 그리고 서로를 비방하며 균열을 키워 가는 주인공 가족의 모습은 애증과 혐오가 뒤섞인 감정선을 따라 점층적인 불안을 만들어낸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는 주인공 지수가 있다.


소설의 프롤로그는 사춘기 시절, 급격한 신체 변화로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주인공 지수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작고 왜소한 몸으로 존재감 없이 지냈던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식욕으로 급속도로 체구가 커지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지수는 계속 움츠러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변화된 체형은 오랫동안 동경했던 해리아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수영장 사고 이후, 지수는 고향 안진을 떠나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몇 년이 흐른 뒤, 그녀는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든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거식과 폭식을 반복한다.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지수의 몸과 마음은 급속도로 무너져 간다. 휴가를 맞아 고향 안진을 찾은 그녀는 어머니를 통해 학창 시절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애써 밀어 두었던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갑자기 시작된 날개뼈의 통증 역시 지수가 아직 분리해 내지 못한 기억의 흔적이 원인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작가는 사이비 단체 ‘조칠현 교회’가 장악한 마을 공동체의 형태,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모습, 불어난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등 여러 장치를 통해 현대사회 속 억압의 표정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주인공 지수가 자신의 날씬한 몸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이다. 사춘기 시절 비대해진 몸으로 타인과 가족의 시선에 깊은 상처를 입은 지수는 외형이 달라진 이후에도 음식을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고 불안감에 사랑하는 애인과의 관계마저 끊어낸다. 급기야 날개뼈 아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낀다. 그녀의 혼란은 단순히 몸에 관한 강박보다는 아직 분리해 내지 못한 기억이 몸에 남긴 상처처럼 읽힌다. 결국 지수는 신아와 해리아가 운영하는 자연 요법 중심의 치유센터로 향한다.


“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어쩌면 통증은 그 때문에 생기는 걸지도 몰라요. 저 자신을 부정하는 감정 때문에요. 이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 이게 중요한 거죠?”(p.162)


지수는 이미 자신의 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있지만, 삶에서 실천하지 못한다. 치유센터에서 만난 치료인 지우는 ‘최초의 기억’을 마주해야 비로소 치유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수가 떠올리는 최초의 기억은 사춘기 시절 비대해진 몸 뒤에 가려져 있던 어두운 감정이다. 작가는 지수의 일인칭 시점과 수영장 사건을 목격한 체육 교사 김이영, 동창 안지연의 삼인칭 시점을 교차하며, 그 사건의 단면이 아니라 지수가 지닌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이 그림자는 지수가 대학 시절에 쓴 습작 ‘안티오페와 힐라리아’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변주된다. 몸집이 큰 안티오페와 아름다운 힐라리아의 대비는 하나의 자아가 둘로 분기되는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수는 자신이 좋아했던 이 이야기가 원작과는 다른, 각색된 ‘가짜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며 혼란에 빠진다. 아우더가 쓴 원래 소설 속 ‘안티오페’는 자신의 큰 덩치를 부정하지만, 이장화가 각색한 소설에서의 ‘안티오페’는 우람한 체구지만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지며, 본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믿고 있던 이야기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지수는 더 이상 이전의 서사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치유의 방식으로 예전의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이 되기를 선택한다.


<치유의 빛>은 여러 인물의 시선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단면을 드러내는 소설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하나의 주제로 쉽게 수렴되기를 거부하며, 독자는 책을 덮은 뒤에도 무엇을 중심으로 읽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지만,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말하는 ‘치유의 빛’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독자의 불안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문장력과 작가의 감각은 이 소설이 공포 소설인지, 혹은 추리 소설인지 쉽게 규정되지 않게 만들며, 그 모호함 자체가 작품의 긴장으로 작동한다. 그럼에도 여성의 몸과 내면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을 읽고 싶은 이들, 그리고 치유가 단선적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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