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점과 가상의 점을 잇는 소설’

<중급 한국어>(문지혁, 민음사, 2024)

by 하늘진주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민음사, 2013)에서 헤르만 보르흐, 나브코프, 카프카 등 여러 소설가들의 말을 인용하며 ‘소설가와 소설’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소설가의 생애가 ‘굳이 들추어지고 공개되는 자서전’이 되어서는 안 되고, 작품은 ‘인쇄된 책’으로만 이해되어야 한다고 전한다. 이는 독자의 해석을 존중하라는 말로 읽힐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생활의 장막을 유지한 채 작품에 집중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소설은 결국 작가가 관찰한 현실과 그로부터 출발한 상상 위에서 만들어진다. 가상의 세계를 따라가며 울고 웃던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작가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 순간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것은 작가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온전한 창작물인가. 이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바로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민음사, 2024)다. 이 소설은 작가의 이름을 단 화자를 내세운 메타픽션 형식을 통해,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오가며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리’를 탐색한다.


소설가 문지혁(1980~)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소설의 뼈대로 삼는 오토픽션의 기수이다.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귀국 후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며 사는 그의 이력은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전작이 뉴욕에서 삶을 시작하는 서툰 이방인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후작은 한국에 정착해 육아를 하며 프로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담는다. 작가는 <중급 한국어>에서 '어떻게 훌륭한 작품을 쓸 것인가?'와 같은 질문보다는 '어떻게 쓰면서 살아남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앞세우며 무명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런 솔직함은 오늘날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어 독자를 소설의 현실 가까이 끌어당긴다.


<중급 한국어>는 소설 속 화자가 귀국 이후 대학 강의실과 일상에서 반복되는 삶의 장면을 따라간다. 작가의 이름과 같은 주인공은 가족사와 양육, 코로나 시기라는 시간적 배경, 강의실이라는 공간을 겹쳐 살아간다. 이 소설은 거창한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쓰는 삶이 일상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화자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자리에 머무르며 능숙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제목 <중급 한국어>는 글을 쓰고 가르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도달한 중간 상태를 은유하는 이름이다. 이 소설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는 기록에 가깝다.


소설은 화자가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장면과 육아와 생존을 고민하는 현실의 삶을 교차시킨다. 독자는 이것이 허구의 소설인지, 아니면 자전적 에세이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작가는 “어떤 글이든 우리가 쓰는 글들은 일종의 수정된 자서전”(p.12)이라고 말하며, “글쓰기의 원초적인 재료는 바로 내 삶”(p.154)이라고 주장한다. “인생이란 점을 선으로 잇는 과정”(p.64)이라는 문장처럼, 그는 과거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객관화하는 방식으로 그 당시의 자신을 재구성한다. 그럼에도, 문지혁은 이 작품의 장르를 명확하게 규정하기를 꺼린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두 딸에게 편지를 쓰며 “이 책에 쓴 것이 문학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p.261)고 적는다. 이 작품은 여전히 그에게 삶과 허구를 구분시키기 어려운 일상의 퇴적물이다.


작품 곳곳에는 온전히 집필로만 먹고 살 수 없는 현실적인 작가의 고민이 드러난다. 소설가는 자신을 숭고한 위치의 은둔자로 두지 않고 생존을 고민하는 보통 노동자로 표현한다. 그의 도서가 ‘올해의 문학 나눔의 책’으로 선정됐음에도 정작 출판사와 인세 지급 문제로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일화는 무명작가의 삶이 지닌 씁쓸한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급기야 “글쓰기는 사치스러운 악취미에 불과”(p.231)하다는 자조 섞인 고백 끝에 ‘소설 쓰기’를 포기하려는 그의 모습은 이 소설이 작가의 이름만 가지고는 먹고 살 수 없는 문학계의 냉혹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중급 한국어>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법 강의와 일상의 파편이 뒤섞인 작품이다. 무명작가이자 가장으로 살아가는 현실의 삶과 백지를 앞에 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강의는 미묘하게 교차한다. ‘일단 쓰고 그것이 소설이라고 우기라’는 화자의 말이 작품 속 일화인지, 아니면 이 소설 자체의 배경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특히 가독성이 좋은 문장 속에서 불쑥 드러나는 ‘물결 표시’, 아이의 천진난만한 말들은 정제된 작가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생활’의 흔적이다. 에세이의 '고백'이 아닌 소설의 '허구'라는 외피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객관화된 관찰의 대상으로 바꾼다. 독자가 '어디까지가 진짜 문지혁의 삶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가 지혁의 허구?'인지 고민하는 순간, 이 작품의 가치는 비로소 선명해진다. 이런 창작 의도는 소설 작법과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낯선 형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가 지망생이나 소설가의 삶을 엿보고 싶은 독자, 일상의 사소한 경험이 소설이 되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작품이다. 글쓰기와 삶 사이에서 고민하며 써 내려간 작가 문지혁의 솔직한 고백이 일상의 점들을 엮어 내는 문학임을 증명하고 있는 소설, <중급 한국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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