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문학동네, 2026)

손 필사-2

by 하늘진주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 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중략)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p.141) <좋은 이웃>


김애란의 이번 작품집 속 인물들은 사회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우리 주변의 ‘이웃’인 것 같아 좀 두렵다. 이 소설에서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김애란을 “오랫동안 사회학자”라고 지칭한 이유가 너무도 잘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인간’! 이 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다들 ‘돈’ 때문에 허덕이고, ‘돈’ 때문에 고통받는 일들이 허다하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사람들을 위한 베풂에 인색하지 않지만, 가족이 생기고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재산’이 모든 행복의 일순 위처럼 느껴진다. 드넓은 땅의 욕심에 앞으로만 향해 가다 결국에는 무덤 자리 한 뼘만을 얻었다는 톨스토이의 우화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을 지키고,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을 나무랄 수는 없다.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밥을 먹고 싶어도, 상처 하나를 치료하려고 해도, 월말이 되면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것이 관리세, 수도세 폭탄이니 말이다. 지금 대통령이 사람들의 끝없는 자본에 관한 욕망을 계속 통제하려고 해도, 어떻게 될지는 3개월이 지나고 봐야 할 일이다. 인위적인 통제가 이길지, 아니면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이길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번 소설 ‘좋은 이웃’에서 등장인물의 솔직한 고백은 ‘재산’을 지키고 싶어 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왠지 부끄럽다. 이런 상황묘사들이 작가의 치밀한 관찰에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서 드러난 동일성인지 궁금하다. 내심 후자이길 바란다. 나이가 들고 보니 ‘좋은 이웃’은 어쩌면 내가 살고 난 뒤에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관용’의 표시인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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