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필사ㅡ3
“어차피 우리는 열심히 일해도 부모보다 못살 세대잖아요?” (중략)
“당신들이 첫 세대가 아니라 ‘부모보다 못살거나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p.158-159)
‘열심히 일해도 부모보다 못 살 세대’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면죄부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들에서는 경제 성장기 부모들의 부와 경제 침체기의 젊은 세대의 부의 가능성을 비교하며 젊은 세대들의 암울한 미래를 앞다투어 말한다. 반복되어 말하는 기사들을 보며 무심히 받아들이고 있던 그 말을 이 소설 속에서 발견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부모보다 못 살 세대”라는 말은 단순한 경제 지표의 비교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믿음의 붕괴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헐벗고 어려웠던 시절을 ‘빈 주먹’ 하나로 자수성가하던 시기는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좋은 머리는 기본이고, 돈과 정보가 있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물 주변은 이미 가물어 버렸고, 용이 될만한 새끼들은 일찌감치 볕 좋고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니 ‘우리는 열심히 일해도 부모보다 못 살 세대’라는 말이 이해 못 할 말은 아니다. 그래서 “어차피”라는 말이 붙는다. 어차피라는 말은 체념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계관의 붕괴를 봉합하는 접착제다. 더 이상 상승을 기대하지 못할 때, 최소한의 체면과 생존을 확보하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첫 세대가 아니라 ‘부모보다 못 살거나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은 늘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라는 등장인물 ‘기태’의 말은 다른 층위를 건드린다. ‘부모보다 못살 세대’라는 말속에는 ‘체념과 방어’가 숨어 있다. 기태는 그런 젊은 세대에 관한 불만, 그리고 너네보다 더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는 ‘꼰대’의 마음을 이 문장으로 한꺼번에 드러낸다.
누군가의 삶을 겉으로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돈이 자본주의 사회의 잣대’가 된 이상, 돈이 없는 이들은 작아지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양 세대의 환경 비교로 서로 감정들이 상해 버린 소설의 한 장면이지만, 현실 속 상황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우리가 부모 세대와 비교하며 현재의 상황을 불안해하는 것은 ‘가난’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상승 서사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