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빨간 머리 앤>의 앤 셔리를 나만의 짝꿍으로 여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은 나와 아주 비슷하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고아인 그녀와 다르게, 매일 잔소리하시는 부모님, 아웅다웅하던 형제들이 모여 있는 거실을 떠나 혼자인 양 구석방에 틀어박혀 꿈꿀 수 있었던 것도 ‘나 역시도 항상 세상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앤’이 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앤’이 되고 싶은 소녀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나만의 특별한 짝꿍이 아니었고, 나이가 들수록 구름 속을 둥둥 떠다니던 몽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의 쓴맛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난 이제 ‘꿈보다는 현실의 맛’을 매섭게 느끼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행렬에 들어서는 것을 선택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동네 친구들과 이런저런 현실적인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왜 살이 찔까?”
“일은 하고 싶은데 너무 스트레스는 받기 싫다.”
대화 소재는 언제나 비슷했다. 친구들의 사정도, 내 사정도 특별하게 다르지 않았고,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이렇게 대화하는 것처럼, 이야기 소재를 항상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매일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 아이들이 다 커서 이제는 ‘내 손길이 필요 없다’라며 ‘배신’을 때릴지라도 흔쾌히 웃을 수 있는 여유, ‘다이어트 걱정’, ‘건강 걱정’보다 주변에 환하게 비치는 햇살처럼 즐거운 웃음거리를 찾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웃을 일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내가 유머 코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가정이 떠올랐다. 남이 만들어준 웃음에는 낄낄대며 웃을 수 있지만, 정작 내 삶에서 웃음을 찾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웃을 일이 많이 없다는 것이 진실일지, 아니면 웃음거리를 찾아다니는 일에는 게을렀을지, 여전히 그 답을 모르겠다.
누군가 슬쩍 농담을 던지면 사람들은 일제히 웃지만, 나는 그 농담의 의미를 먼저 생각한다. 왜 웃긴 걸까? 어디가 웃긴 걸까? 그렇게 분석하며 의미를 찾는 순간 웃음의 흐름은 이미 지나가 버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매사에 진지한 사람도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예전 소설 창작 교실에서 만난 한 작가는 자신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먼저 바라보기에 결국 ‘정신이 피폐해지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진지하게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색칠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올해는 작은 사고실험을 한번 해 보려고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웃음거리를 찾아보는 실험이다. 회색빛처럼 보이는 하루 속에서도 생각보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숨어 있는지, 진지한 사람도 웃음을 발견할 수 있는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다.
어쩌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오늘의 하루가 사실은 가장 우스운 날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