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카렐 차페크/열린 책들/2025)

손 필사

by 하늘진주


20장을 읽다가 문득 멈칫했다. 이 부분부터 그동안 내가 이해하고 따라온 이야기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 장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소설을 ‘평범한 인생’에 대한 기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제목이 그랬고, 화자의 말투도 그랬다. 조용하고 단정한 문장들 속에서 나는 그의 삶을 큰 의심 없이 따라갔다.


하지만 정년퇴직한 철도 공무원인 한 남자가 평범한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비교적 평범하고 깨끗하게 쓰인 듯한 삶’이 이 장부터는 독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놀랄만한 변화가 시작된다.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공부하고, 철도청에 들어가 결혼하고 승진하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비교적 평범하고 깨끗하게 쓰인 듯한 삶’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화자의 어조가 바뀌며 하나의 심리극처럼 변한다. 그동안 책을 읽었을 때는 화자의 말 하나, 삶의 모습들을 엿보며 내 삶을 반추하며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장부터는 그동안의 사색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작가의 연출과 화자의 숨겨진 모습에 놀라며 숨 가쁘게 읽었다.


그동안 내가 ‘평범함’이라는 테두리로 이 책을 읽고 성찰했던 이유는 ‘평범한 인생’이라는 이 책의 제목,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자신이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화자의 말에 빠져 있었던 탓인가?


화자의 어조가 바뀌는 순간, 나는 다시 책의 첫 장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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