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에게 질문을 건넨다면?’

<우리를 읽은 책들>(이윤영/이상길, 이음, 2024)

by 하늘진주
“우리를 키운 책들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배운’ 망덕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이 책의 필자들은 자기들을 키운 책들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p.7)


이 재치 있는 선언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겠다는 농담이 아니다. 여기에는 지식인으로서 자기를 만든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진지한 다짐이 담겨 있다. <우리를 읽은 책들>(이음, 2024)은 영화학자 이윤영과 문화연구자 이상길이 2021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생각, 시대를 바꾸다’라는 주제로 <출판문화>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23편의 서평집이다. 두 저자는 한국과 서구 사회에서 인식의 전환을 이끈 책들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읽으며 화두를 던진다. 서문을 쓴 이윤영은 프랑스 영화비평가 세르주 다네 Serge Daney(1944-1992)의 글, ‘우리의 유년 시절을 지켜보았던 영화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서평집의 제목 ‘우리를 읽은 책들’이 나왔다고 전한다. 다네가 본 몇몇 영화들이 개인사와 더불어 특별한 기억을 선물한 것처럼, 두 필자가 주의 깊게 읽은 여러 책은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이윤영은 오랜 시간 함께 하며 큰 배움을 얻었던 책들을 단순히 ‘읽다’가 아니라 “‘마음을 읽다’에서처럼 ‘이해하다’, ‘뜻을 헤아려 알다’라는 뜻”(p.9)으로 확장하며 선정된 책들에 관해 애정을 드러낸다. <우리를 읽은 책들>은 두 저자들의 지적 세계를 보여주는 서평집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한국 작가의 텍스트, 2부는 서구 사상가들의 저작을 다룬다. 이 구분은 단순한 지역 차이가 아니라, 독서를 대하는 두 가지 시선을 드러낸다. 1부에서 이윤영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김수영 전집 2: 산문’, ‘전태일 평전’ 등 한국의 근현대사와 언어, 문화의 결을 짚는다. 2부에서 이상길은 ‘현대세계의 일상성’ , ‘권력과 지식-미셸 푸코와의 대담’,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알제리의 모순’ 등 서구 사회의 권력, 역사, 철학을 추적한다. 서평집에 실린 책들은 1980~90년대 대학을 다닌 지식인들의 독서 목록을 형성해 온 텍스트들이다. 두 필자는 험난한 지식 투쟁의 역사를 함께 한 작품들을 현시점에서 다시 읽고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하며 ‘자기 성찰’ 어린 좋은 글을 쓰고자 고뇌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서평 곳곳에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두 저자가 각기 다른 학문적 토대와 관점에서 책의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이다. 1부를 쓴 영화학자인 이윤영은 ‘클로즈업한 카메라 렌즈’처럼 소외된 존재를 살피고, 언어의 어색함마저 간파한다. 필자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를 매번 읽을 때면 ‘아주 섬뜩한 적의’를 느끼고, <전태일 평전>에서는 “성년의 전태일이 일관되게 보여준 태도 중 하나”인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태도”(p.319)를 포착한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필자는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을 묘사하기 위해 표현된 “인자스럽다, 슬프다, 너그럽다, 슬기롭다 하는 어휘들”(p.28)에서 ‘정확한 형용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저자의 표현 방식을 짚어낸다. <우리 말 바로 쓰기 1-5>에서 필자는 한자어 남용과 번역 투의 말을 없애고 ‘살아 있는 말’, 깨끗한 입말을 만들기 위한 저자 이오덕의 노력을 읽어낸다. 필자 이윤영에게 독서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제주도 4.3 사건이나 서울 재개발 시기의 소시민의 아픔처럼 우리 역사의 비극을 살피고 한국의 얼과 정체성을 되새김질하는 행위에 가깝다.

반면, 2부에서 이상길의 읽기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윤영이 유려한 문체와 공감 어린 언어로 지나간 한국 사회를 더듬는다면, 그는 객관적인 관점과 폭넓은 식견으로 개념과 구조를 파악하고 세계를 해석한다. 그의 관심은 텍스트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식민지 경험, 권력, 역사, 이념 등 서구 사회의 사상적 궤적을 따라가며, 지식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다. 이 때문에 2부의 서평은 1부에 비해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곧 그의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그는 장 폴 사르트르를 통해 지식인의 역할을 이렇게 환기한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자기 성찰’을 넘어 지식인이라면 “이데올로기가 지식에 가하는 한계를 그 자신의 안팎에서 파악해 내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p.135)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알제리의 모순>을 통해 우리 사회 현실과 비교하며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빈민, 실업자 (...) 새로운 약탈적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적응(또는 부적응) 하고 있는지”(p.184)를 묻는다. 그의 서평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구조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우리를 읽은 책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서평이란 무엇인가. 필자 이상길은 서평집을 닫으며 프루스트의 말을 빌려 ‘독서의 의미’와 서평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는 ‘독서’가 “바로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지점에서 독자의 지혜가 시작”(p.241)되는 행위이고, ‘서평’은 “‘책의 일관성’과 이에 관한 ‘개성적 평’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글”(P.243)이라고 설명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서평은 단순한 요약이 아니다. 그것은 책을 다시 읽고, 그 책을 통해 자신을 다시 사유하는 작업이다. 23편의 책들을 미리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두 저자의 깊은 지적 세계에 단번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이 예전 지식인의 열정을 들끓게 했던 이데올로기 쟁점을 얼마나 공감할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사회학과 인류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이들이라면 2부의 서평들을 마냥 난해하게 여길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이 텍스트들이 전하는 '낯섦'은 서평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즐거운 자극이 될 수 있고, 저자들과 함께 지적 격동기를 통과해 온 중장년층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읽은 책의 중요성과 글쓰기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책, <우리를 읽은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