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얼룩과 지우고 싶지 않은 사랑 사이에서

<괴물들>(클레어 데더러, 을유출판사, 2024)

by 하늘진주

개인적으로, 고은의 시 ‘그 꽃’을 즐겨 음미하며 간결한 시어가 이토록 깊은 성찰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투’ 이후 마주한 시를 좋아했던 시간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그의 행적은 작품보다 먼저 시야를 가렸다. 그날 이후 그 시는 더 이상 같은 얼굴로 읽히지 않았다. 고은의 시를 읽던 한 독자의 혼란은 비단 개인적인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작품을 사랑한 마음과 창작자를 향한 혐오 사이에서 멈춰 선다. 모든 예술가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성에 선명한 ‘얼룩’이 번지는 순간 독자의 고뇌는 시작된다.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사랑해 온 이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까?” 클레어 데더러(Claire Dederer, 1976~)의 비평 에세이 <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MONSTERS : A Fan’s Deilemma)(을유출판사, 2024)은 바로 열정적인 팬들이 지니는 윤리적 딜레마를 섬세하게 파고든다.


이 책은 저자가 <파리 리뷰>에 기고했던 「괴물 같은 사람들의 예술품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바탕으로 쓰였다. 데더러는 로만 폴란스키의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아티스트의 작품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도덕성을 혐오해야만 하는 팬들의 ‘집착’과 ‘고민’을 들여다본다. 2017년 하비 와인스틴 사건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이 질문에 거대한 사회적 불을 지폈다. 하지만 데더러는 남성 예술가의 성범죄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신 예술사 전반의 다양한 ‘괴물성’을 호출한다. 반유대주의 성향을 보인 바그너, 성별 권력 문제를 남긴 헤밍웨이와 피카소, 여성 작가에게만 가혹했던 윤리 기준 등이 그 예다. <괴물들>은 예술사 전반에 깊게 스민 ‘괴물성’과 ‘천재’에 관한 세간의 인식을 분석하며, 시대에 따라 예술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저자가 던지는 숱한 질문 중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화두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이다. 많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학대했던 피카소의 폭력성을 알면서도 그의 입체주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관객은 당혹감을 느낀다. 데더러 역시 이 끈질긴 팬심과 도덕적 비난 사이의 괴리를 숨기지 않는다. “나는 얼마든지 폴란스키를 고발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나를 부른다.”라는 그녀의 고백은, 작품을 내치지 못하는 약한 의지와 “나 자신에 대한 개념마저 흐트러트렸다”(p.64)로 이어지는 솔직한 자기 성찰이다.


이 어쩔 수 없이 집요한 ‘팬심’은 끝내 ‘괴물’이라는 단어 자체를 해부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저자에게 괴물이란 허물이 있는 예술가뿐 아니라 “특정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작품을 작품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p.65)이기도 하다. 창작자의 과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작품에 관한 ‘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데더러는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과거와 다른 현대의 계몽적인 인식이 이런 변화를 불러왔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과거에는 “괴물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용인”(p.150)되었지만, 현재는 용납하기 어려운 가부장적인 인식에 따른 남성 작가의 여성 편력, 시대상에 따른 인종 차별 등이 예술가들의 업적에 오점을 남겼다는 해석이다. 그렇지만, 반유대 감정을 지닌 바그너의 경우, “역사에 의해 얼룩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얼룩지게 만들었”다며 “그 자체로 잘못”(p.156)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데더러는 ‘천재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면죄부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취는 윤리적 결함을 상쇄하는 합리적 근거가 되어왔다. “악마는 예술적 충동의 사촌(p.136)”이라며 천재의 폭주를 미화하는 관점은, 사실 좋아하는 작품을 아무 죄책감 없이 향유하고 싶은 독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저자는 이러한 ‘천재 신화’가 철저히 남성 중심적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남성의 방탕함은 영웅적 서사가 되지만, 창작을 위해 가정을 소홀히 한 여성은 ‘비정한 괴물’로 낙인찍힌다. 여성의 야망에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 속에서, 천재성 신화에 가려진 왜곡된 시선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흥미로운 전개에 비해 저자가 내놓은 결론은 다소 허탈하다.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감정적 논리에서 결점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한다(p.315)”는 문장은 앞선 논쟁의 밀도에 비해 의외로 평이한 화해처럼 읽히기도 한다. 게다가 데더러는 각 장마다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거듭 질문을 되새기는 방식을 취한다. 이 점은 사고를 깊게 확장시키는 동시에, 일부 독자에게는 미완의 인상과 혼란을 남긴다. 그럼에도 <괴물들>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그 ‘혼란’을 다루는 저자의 태도에 있다. 저자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관이 되기를 거부한다. 대신 우리에게 ‘불편하게 사랑하는 법’을 제안한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을 앞세워 저자 자신의 ‘괴물성’을 들여다보는 부분은 이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예술가와 작품의 관계를 고민하는 독자, 진솔한 비평 에세이를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을 쉽게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다. 위대한 걸작 앞에 선 감상자의 양심이 시험대에 오를 때, 이 책은 믿을 만한 길잡이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