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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31. 2021

아이들의 무기력과 선생님들의 줄다리기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이자 또 하나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기도 하다. 아직은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요 며칠, 연말에 휘몰아치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거의 녹초가 되었지만 자꾸만 2가지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왜 나만 열심히 해야 해요?”와 “왜 나만 옮겨야 해요?”, 며칠 전 아이들의 수업을 갔다가 들었던 말이다. 각각 다른 학교에서 접했던 말이지만 ‘왜 나만’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콕 박히는지 모르겠다. ‘왜 나만’이라는 말에는 억울함과 분노, 서글픔이 숨어 있는 말이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혼자 감내하고 또 감내하다 마지막에 터뜨리는 사람의 저항이기도 하다. 난 그 아이들의 말속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했을까?


 어느 것 하나 쉬운 수업은 없지만, 프리랜스 강사로서 가장 어려운 수업은 연말 시즌에 친구들을 만날 때다. 학기 초의 친구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열정으로 대답도 우렁차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특히 마지막 시험이라고 치르고 나면 만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변한다. 일선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더 잘 느끼겠지만, 가끔 단기 수업을 들어가다 보니 그 변화가 확연하다. 이번에는 그런 경우 중의 하나였다.


 “왜 나만 옮겨야 해요”는 첫 번째 학교에서 겪었던 일이다. 첫 번째 학교는 학교에 시험기간이라 거의 2주 만에 가는 곳이었다. 그동안 예뻐했던 친구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로 갔다. 그리고 연말이라 아이들이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날 밤까지 열심히 수업 프로그램을 짜 갔다. 하지만 아이들의 조 구성을 세밀하게 챙기지 못한 것이 나의 착오였다. 마지막이라 아이들이 원하는 데로 앉도록 했는데 그것이 분란의 출발점일 줄이야. 아이들이 하고 싶은 데로 앉다 보니 문제가 되는 조가 하나 있었다. 6명의 남학생들이 가득 앉은 한 조,  친구들은 내 말에 집중하기보다는 서로 떠들기 바빴고 수업 분위기가 계속 어수선했다. 그래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그 조의 친구들끼리 제비뽑기를 해서 뽑힌 두 명을 다른 조로 보냈다. 그런데 다른 조로 보내진 친구들은 마음이 계속 안 좋았는지 자는 척, 전혀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 “왜 나만 옮겨야 해요?”라며 억울한 눈빛으로, 구시렁거리는 말로 연신 불만을 털어놓았다.


 “왜 나만 그걸 해야 해요?”는 두 번째 학교에서 겪었던 일이다.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모든 스케줄이 다 밀렸던 학교. 그래서 마지막 수업을 끝마치기까지 다른 학교와의 일정을 조정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 고1, 2학년 전체 반을 들어가는 프로젝트 수업이라 유달리 선생님들과의 회의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참여도에 따라 결과물이 달리 나오는 수업이라 무척 걱정하며 교실을 들어섰다. 교실을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싸한 기분, 아이들의 표정들이 모두 다 무기력하고 피곤해 보였다. 여러 가지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며 기운을 높이려고 했지만 다들 힘들어하며 잘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바로 전날에 기말고사가 끝났다는 거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업 내용들을 조정하며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그러던 중 열심히 하는듯한 한 친구가 불만을 터뜨렸다. “왜 나만 열심히 해야 해요?”라고. 사실 그 조의 친구들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조장이었던 그 친구만 다른 조의 활동 속도에 맞추어 간신히 따라가던 참이었다.

 

 올 해의 마지막 수업들이라 긍정적으로, 즐겁게 마무리 짓고 싶었던 두 수업들은 스스로의 역량 부족을 절실히 느끼며 찜찜하게 끝났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은 “왜 나만”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아마도 ‘저, 억울해요. 피곤해요. 건드리지 마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나만 피해 보기 싫다는 피해의식, 나를 좀 더 봐 달라는 투정,  수많은 단어들이 아이들의 ‘왜 나만’이라는 말속에 웅크리고 있다.   미리 알아채고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을까? 아니면 외부강사로서의 나의 소명을 다해야 했을까? 일 년 중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시기, 12월. 연말이면 일상에 지친 아이들의 무기력과 조금이라도 배움을 더 넣어주고 싶은 선생님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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