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동안 풀만 뜯어먹던 소와 육식만 먹던 사자가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소 아내는 매 끼니마다 가장 좋아하는 풀을 정성껏 요리해 부부 밥상에 올려놓았고, 사자 신랑은 툴툴댔지만 애써 목구멍에 집어넣었다. 때때로 그는 훌쩍 밖으로 나가 진한 고기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잠이 든 신랑을 보며 소 아내는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서로 치열했던 갈등과 싸움들이 잦아들 무렵, 사자 남편이 물었다.
“우리, 편안하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말이야.”
또다시 고기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돌아온 사자 남편을 본 소 아내는 속으로 생각했다.
‘편안하기는 개뿔. 지겹다. 지겨워.’
어제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을 본체만체하며 나는 소 부인과 똑같은 말을 되뇌었다. 결혼 초, 술 때문에 참 많이도 티격태격했는데 결혼생활 19년째인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을 보면 우리 부부도 참 징그럽다. 사람들을 만나 힘을 얻는 대장부 스타일인 남편과 집에서 에너지를 얻는 집순이인 나는 처음부터 많이 달랐다. 너무 달라서 처음 만날 때는 사소한 것까지도 신경이 쓰였다.
“언니, 형부, B형에 곱슬머리래.”
처음 동생들을 인사 나눌 때 첫째가 대뜸 말했다. ‘B형에, 곱슬머리’, 남편은 그 당시 유행하던 나쁜 남자의 유형을 모두 가지고 있어 동생들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많이 받았다. 혈액형, 머리카락 곱슬기, 그런 사소한 특징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웃고 넘길만한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평생 동반자의 길을 염두에 둘 때는 뭐든지 예민하게 느껴졌다. 괜히 남편의 생일과 내 생일을 넣어 궁합을 맞춰 보기도 했고, 서로 티격태격할 때면 ‘역시 B형에 곱슬머리라 그런가’라며 슬쩍 싸움의 책임을 신랑에게 미루기도 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달랐지만 그중에서 가장 안 맞는 것은 역시 술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술이 아니라 신랑이 술자리를 즐기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내가 술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주량이 강하신 친정아버지 덕분에 술을 못 먹는 체질도 아니고 오빠도 동생들도 나름 술을 즐기는 편이다. 다만 아이들을 임신하고 키우면서 자연스레 술을 멀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남편은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가설에 방점을 찍듯이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술을 마셔댔다. 때로는 후배들과, 때로는 일의 연장이라며, 또 때로는 연말 기운에 취해서 열심히 술자리를 찾았다. 최근 코로나로 술자리가 좀 잦아들고 집에서 혼술을 즐기곤 했지만, 백신을 맞고 나서는 조금씩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인다.
솔직히 술은 죄가 없다. 유럽 중세 시절, 많은 방랑 시인들이 기사와 귀부인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술을 향해 연시를 보낸다. 나 역시도 술을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콕 박혀 있다.
뜨거운 여름의 더위를 한순간에 가시게 해주는 거품이 동동 떠있는 시원한 맥주, 기름진 치킨과 함께 상처 준 사람들을 씹어 대며 목구멍으로 넘기는 소주, 어쩌다 면세점 갈 때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양 남편의 눈을 사로잡는 매력 넘치는 양주, 도도하게 자신의 고상함을 자랑하는 와인, 시큼 털털 속에 달콤함을 감추고 있는 막걸리, 톡 쏘는 스파클링과 왠지 파티 때마다 갖추어야 할 것 같은 샴페인.
술은 갖가지 다양한 이름과 저마다의 사연들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기쁠 때는 기쁨의 한잔, 슬플 때는 슬픔의 한 잔, 사랑하는 이와 이별했을 때는 이별의 한 잔, 수험생의 100일을 축하하는 몰래 마시는 100 일주 한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술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그 많은 허물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모든 술꾼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포도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술은 역사적으로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에 깊이 자리 잡은 감로수였다. 그런 술이 사람들에게 지탄받고 원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술을 즐기고 ‘그놈의 술’이라며 자신의 허물을 술에게 미룬 사람들 때문이다.
어제 갈등 역시,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남편의 전화 한 통이 문제였다. 갑자기 밤늦게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신다는 거였다. 평소에는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들의 만남을 자제하던 남편이 대범해진 것은 아마도 한 잔 두 잔 걸친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지만 다들 그냥 돌아간 듯싶다. 아침의 집안 풍경은 그대로인 걸 보면. 홧김에 일찍 잠이 든 나는 지난밤의 진실을 알 수 없다. 확실히 술은 죄가 없지만, 그 죄 없는 술을 마신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저녁, 아마도 남편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일찍 귀가할 것이다. 지난밤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을 잊어버린 채. 그러면 난 며칠 동안 대면 대면하며 대하겠지. 역시 사람의 본성과 습성은 정말 변하지 않는 걸까?
“남자는 말이지, 늙으면 힘이 달려서 술을 잘 못 마시게 된단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아 보렴.”
남편의 술 때문에 힘들어하던 나에게 친정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남편이 20세에 처음 술을 마셨을 것이라 가정하면, 그는 거의 몇십 년을 술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술 마실 체력이 남아도나 보다. 남편은 몇십 년간의 알코올들이 몸에 차곡차곡 쌓여 외부에서의 나쁜 세균들은 접근도 어려울 것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자체 알코올 시스템이 작동하니 오히려 잘 된 일인가? 사자와 결혼한 소의 심정으로 풀이나 열심히 뜯어야 겠다.
(원고지 14.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