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Feb 01. 2022

내가 청소년 소설에 관심 있는 이유

 나는 왜 글을 읽고 쓰는가? 나는 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까? 난 왜 힘들 때마다 책을 잡을까? 나는 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을까?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질문들을 떠 올리고 답을 구한다. 천재적인 재능도 없고, 계속 지니고 가는 이 꿈이 현실이 될지 자신도 없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이 꿈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지금, 조금씩 ‘가능’보다는 ‘불가능’이라는 저울의 추로 무게가 더 쏠리고 있지만,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처음에는 워낙 책을 안 읽는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주장은 대외적으로 내가 아동 청소년 문학에 관심 있다고 설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점점 나이 먹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맞추어 내 글쓰기의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내 관심은 오직 청소년 문학과 판타지 문학에 멈추어 있다. 과거의 청소년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며 그 이유를 탐색해 본다.


 만일 내가 행복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면 지금까지 이 꿈을 계속해서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마다 글 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치유하는 방식이었다. 내성적이고 말재주가 없었던 나는 항상 사람들 앞에서 주장을 잘 펼치지 못했다. 워낙 역동적이고 다혈질인 친정아버지는 생각이 느린 나를 늘 답답해하셨다. 그래서인지 특히 친정아버지 앞에서는 늘 얼어붙었고, 그냥 내 의견이 아니더라도 “네”라고 말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공부를 어느 정도 하던 중학교 시절까지는 부모님과의 관계는 문제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머리가 좀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중학교 성적은 항상 잘 나왔고, 부모님은 항상 그런 나를 예뻐하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잘하긴 했지만, 다음에 더 잘해라.”라고.

 하지만 고등학교는 ‘두뇌’보다는 ‘엉덩이’ 힘으로 하는 공부였다. 중3 겨울 방학을 마음 편하게 보내고 치른 고등학교 첫 시험, 난 난생처음 받아보는 수학 점수에 절망했다. 아마 그때부터 시작이었을 것이다. 나의 사춘기와 함께 시작된 아픔과 망각의 시작이.

 

 사실 그 시절의 내 모습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 전 동생들과 사춘기 시절을 나누다 발견한 사실이다. 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부모님들과 부딪히며 이런저런 일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저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면 괜히 눈물이 먼저 나온다. 마음이 묵직하고 아픈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 어른이 된 처지에서 추측해 보면, 그 당시의 난, ‘방황하는 나를 누군가 꼭 잡아 줬으면 했고, 믿어 줬으면’이라는 마음뿐이었다. 항상 힘들었고 고통스러웠고 무기력했다.


 겨우 그 시절을 보내고 ’재수는 절대로 안 된다‘는 집안 분위기에 맞춰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 수학이 내 발목을 잡았을 뿐인지, 그동안 쌓아온 독서력 때문인지 다른 성적들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 무기력하고 회피하려고만 했던‘ 과거의 나를 무척 원망했다. 맹렬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어떻게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그 황금 같은 시절을 그대로 바보같이 보낸 날 정말 미워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안다. 그 당시 난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보내는 그것이야말로 나만의 치유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 안으로만 모든 것을 삭히던 나에게 함께 해 준 것은 오직 책과 글뿐이었다. 너무 힘들 때는 글조차 쓸 수 없었지만, 그때 글이, 책이 없었다면 난 더 힘들었을 것이다. 동생들은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책 보는 모습’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난 우리 아이들이 참 부럽다. 그렇다고 아들들이 특별한 재능을 가지거나 엄청나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밝음이, 그 모습 자체만으로 사랑스럽다. 가진 능력이 아니라, 성적이 아니라, 성별이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예전의 상처가 많았던 나를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을 성적으로, 차별로 키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많이 한다. 혹시 내가 어린 시절 받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엄하게 아이들을 다그치려고 할 때마다 남편이 많이 붙잡아 준다.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행운은 남편 같은 아빠를 가졌다는 점일 것이다. 사춘기 시절, 시부모님이 어떠셨냐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말했다. ‘형제가 많아 집안이 매우 가난하긴 했지만 한 번도 체벌을 받아본 적이 없고 항상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았다’라고. 그래서인지 남편의 형제들은 부모님께 지극하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들이 다른 부모님들에 비해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이 아주 엄격하셨고 체벌과 차별이 좀 많으셨긴 하지만 그냥 평범한 그 당시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살기가 팍팍했던 예전의 부모님들에게 자식들은 어떻게든 당신들이 교육해서 건사해야만 하는 존재였고 소유물이셨을 테니까. 특히 열정과 성취욕이 강하신 우리 부모님은 아이의 성적이 당신들을 뽐낼 수 있는 ‘최고의 트로피’라고 생각하셨고, 무슨 일을 하든 최고를 바라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형제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나 빼고, 말이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난 부모님과 기질과 성향이 너무 달랐고, 두려움이 많았던 사춘기의 난 계속 몰아치는 압박을 못 견디고 포기했을 뿐이라고.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을 키우며 자꾸만 그 시절의 나와 우연히 만난다. 지금 내 나이도 역시 그 당시의 부모님 나이이다. 부모님들 역시 이런저런 상황으로 아주 힘드셨을 테지만, 조금만 그 당시의 나를 더 다독거려 주셨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좀 더 마음을 헤아려 주고. 믿어 주고 기다려 주고, 그랬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인지 난 계속 청소년 소설에 관심이 많다.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때의 나에게 ‘괜찮다’라고 계속 하기 위해.


 ‘늦어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고, 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은 가치가 있다’라고

그때의 사춘기 나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기 위해 계속 글을 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수험생들에게 세렌디피티의 기운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