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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03. 2022

글 쓸 때 가장 좋아하는 시긴

 내가 글 쓸 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주황색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녘이다. 집 안의 가족들이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투박한 회색 커피잔에 보이차 티백을 넣어 뜨거운 물을 받는다. 기다리는 동안 밤새 쌓였던 노곤한 잠이 조금씩 깨기를 기다린다. 보이차가 갈색빛으로 우러나길 기다리는 동안 거실 컴퓨터를 켠다. 이제 새벽 글쓰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그새 곱게 우러난 보이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의 글감을 조금씩 머릿속으로 떠올려 본다. 부드러운 보이차의 목 넘김과 함께 달콤한 잠이 조금씩 달아나기 시작한다. 각방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가족들의 코 고는 소리가 더없이 편안하다.


 글 쓸 때 가장 집중이 잘 되는 때는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이다. 난 주위의 소음이 없는 곳, 마음의 요동침이 없는 곳에서 글이 잘 써진다. 물론 분노에 휩싸여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쓰는 글쓰기를 제외하고 말이다. 몰아치듯이 화를 내며 쓰는 글쓰기는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냥 쓰고 소각시킬 용으로 쓰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글쓰기, 좀 더 집중하고 싶은 글쓰기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인기척, 특히 가족들의 움직임은 너무 신경이 쓰여 글을 쓸 수가 없다. 아직 전용 글쓰기 공간이 없고 자주 글 쓰는 공간이 모든 가족이 사용하는 공용공간인 거실이라 더 그렇다. 다듬어지지 않은 초고는 너무 날 것이라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다. 그냥 손이 가는 데로, 마음이 가는 데로 쓰기에, 타이핑 치는 순간에도 마음이 안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마우스 키를 움직여 바로 지우고 싶다. 하지만 우선은 내 버려둔다.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고 지울 수 있으니까. 혼자 글을 쓸 때는 그런 여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족들이 조금씩 깨어나고 온 집안을 활보하기 시작하면 나의 글쓰기는 멈추어야 한다. 가족들이 글을 쓰는 내 뒤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밥을 찾고, 옆에서 TV라도 보고 있으면 도저히 글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점점 가족들의 기상 벨들이 조금씩 울리기 시작하면 신경이 온통 날카롭다. ‘아 이제 글 쓰는 시간이 끝났구나’ 싶어 조금씩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직 끝내지 못한 구절들이, 아직 펼치지 못한 이야기들이 못내 아쉽다. 온 집안의 구석구석 불이 켜지고 우리 집의 아침은 시작한다. 밤새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사랑하는 남자들이 각 방에서 기어 나온다. 밤새 잠들었던 ‘곰’들은 배고픈 표정으로 먼저 냉장고 문부터 열어젖힌다.


 내가 글이 잘 써지는 때는 잠이 많은 가족이 늦게 일어나는 새벽이요, 아침이다. 누구 방해 없이 온 집안을 나 홀로 쓸 수 있을 때 글이 가장 잘 써진다. 그 순간만큼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압박감에 마음 편하게 글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들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아침이 시작되면 나도 역시 또 다른 사회적 자아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도저히 글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아직 난 글쓰기에만 몰두할 자격이 가진 전업 작가도 아니요, 이런저런 일을 다 해야 하는 잡일꾼이니까. 가족들이 움직이고 우리 집 아침이 시작된다. 또다시 이제 내 일터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루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움직이고, 이야기 나누고, 생각하고, 일하고 그동안 나의 이야기들은 쌓이고 쌓여 또다시 새벽녘에 풀어낼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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