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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07. 2022

싱어게인2, 파란 마녀 신유미의 한 발자국

  매주 월요일 밤을 가슴 떨리는 두근거림과 설렘을 안겨 주었던 프로그램, ‘싱어게인2’가 얼마 전에 끝냈다. 수많은 무명, 유명 가수들이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문을 두드렸고, 제각각의 사연들과 가수들의 노래들이 내 월요일 밤을 ‘라이브 쇼’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 가수들 틈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푹 빠져 버렸던 나만의 우승 후보 가수는 당연하게 파이널 라운드에 안착했다. 하지만 그 중요한 라운드에서 나의 가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선곡을 했고, 결국 내가 원했던 등수를 얻지 못한 채 그 경쟁은 마무리되었다. 프로그램 내내 ‘31호 가수’, 혹은 ‘파란 마녀’라 불리는 가수 신유미, 그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솔직히 그녀를 처음 그 오디션에서 봤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미 다른 아이돌 경쟁 프로그램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많이 접했던 터라 왜 이 프로그램에 나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미 방송계에서 다른 분야에서 꽤 유명세를 갖고 있으면서 굳이 제 커리어의 명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이 오디션에 나온 것이 신기했다. 게다가 첫 오디션 곡이, 유명 아이돌 블랙 핑크의 ‘How do you like that’ 이라니. 보통 오디션 참가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가창력과 매력이 잘 드러나고 익숙한 오디션 참가곡으로 도전을 했기에, 그날 그녀의 선택과 도전은 좀 무모해 보였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과열된 자신감인지, 오디션에 대한 무지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가수 신유미는 기존 노래와는 전혀 다른 편곡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아이돌 4명이 불렀던 원곡의 경쾌한 리듬감과 조화로운 음색 대신 그녀는 강한 소망이 실린 듯한 읊조림과 느린 리듬감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때로는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때로는 강한 눈빛으로 심사위원들을, 시청자들을 천천히 홀렸다. 그녀의 노랫 소절들은 가느다란 파란 조명 불빛과 함께 아지랑이처럼 무대 위를 서서히 기어올랐고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그녀의 매력적인 음색과 함께 온 무대가 눈부신 파란 불꽃으로 폭발했다. 31호 가수, 신유미, 지금까지 보지 못한 마력을 지닌 가수, ‘파란 마녀’의 탄생이었다.


 여리여리한 몸매에 칠흑처럼 까맣고 긴 머리를 가진 가수 신유미는 외모도, 노래 선택도 다른 가수들과는 너무 달랐다. 그녀는 기존의 유명한 아이돌 노래들을 자신만이 가진 두터운 마녀 무쇠솥에 넣어 하나하나 기다란 막대로 저어가며 색다른 버전으로 편곡했다. 그녀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신선’하고 ’독창적‘이고 ‘놀랍다’라는 심사위원들의 평을 들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가 선택하고 불렀던 마지막 결승전 노래만은 도저히 맘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동안 가수 신유미가 만들었던 ‘독특한 편곡 마법’에 빠져 있었던 탓인지 마지막 오디션 곡은 그녀의 매력을 최고로 잘 보여줄 수 있는 노래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치열한 노래 경쟁이 아직 끝이 나지 않았건만, 가수 신유미는 ‘갈라쇼’처럼 가수들과의 추억을 그리고 함께 축제를 즐기자는 노래를 불렀다. 파이널 라운드의 다른 가수들은 제 인생의 모든 경험을 모조리 넣어 빡빡 갈아 넣은 듯한 사연 있는 노래로 청중들을, 심사위원들을 홀리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그녀의 파이널 라운드 등수는 파이널 6위(심사위원 등수)로 마무리 지었다. 물론 같이 진행한 시청자 투표로 그 등수가 조금 바뀐 듯했지만, 그날 밤 왠지 모를 실망감과 함께 TV 전원을 꺼 버려 결과는 알 수 없다.


 며칠 뒤, 그녀의 기사를 인터넷에서 접했다. 솔직히 그녀가 마지막 무대를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남아 있는 탓에 좀 삐딱한 심정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신문의 기사 첫머리는 그녀의 말로 시작됐다.


 “'아직도 그러고 살아?' '도대체 왜 가수는 하려는 거야', 이런 얘기까지 들었거든요. 탈락하더라도 '싱어게인' 같은 큰 무대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지난날의 나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래가 좋았던 신유미는 생계를 위해 보컬 트레이너를 시작했지만, 가수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자꾸 '내 음악'이 그리웠다. 꿈꾸지 않는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눈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했다. 그래서 신유미는 자신이 가르친 수많은 제자가 그녀의 노래, 행동을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예선에서 떨어지더라도 꿈꾸고 간직했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나의 조급했던 안달과는 달리 가수 신유미에게 이 오디션에서 우승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존의 안정된 커리어에 정착하지 않고 맨 밑바닥부터 자기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시작하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그녀가 왜 제일 중요한 파이널 라운드에서 함께 참여한 가수들과 즐길 수 있는 축제의 노래, ‘아름다운 강산’을 택했는지 이해가 간다.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가졌던 두렵고 단단한 현실의 벽을 뚫어버린 기쁨과 오디션에서 만난 동료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가수 신유미는 그저 평생 가수의 주변 언저리에서 맴돌던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생 꿈이었던 ‘가수’라는 길에 용기 내어 내 디뎠던 자신의 작은 한 발자국이 무척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녀의 미미한 한 발자국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금씩 가수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단정 짓지 않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 가수 신유미의 용기 있는 행보를 보며, 그리고 "인생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저스트 두잇!"라는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다시금 ‘인생과 도전, 꿈’, 세 단어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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