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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24. 2021

모든 수험생들에게 세렌디피티의 기운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이다. <교양영어사전, 강준만>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1754년에 쓴 「The Three Princes of Serendip」이라는 우화에서 Serendip이라는 섬 왕국의 세 왕자가 섬을 떠나 세상을 겪으면서 뜻밖의 발견을 했다는데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주로 우연한 일에서 중대하고 위대한 발견을 한 경우를 ‘세렌디피티’라고 일컫는다.

 

 바야흐로 올해 입시 결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고3 수험생 엄마들에게 연락하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제삼자인 나는 궁금한 정도이지만, 당사자 부모들은 얼마나 속이 탈까? 얼마 전에 아들 합격 소식을 전해줬던 언니와 만남을 가졌다. 같이 즐겁게 커피를 마 뒤, ‘아들에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얼마나 좋냐,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며 덕담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언니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1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았다. 1년 365일, 누구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고 한 해 동안 겪는 일들은 다 다를 것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3 수험생, 엄마들에게 고3 일 년은 더 가혹하고 바삐 지나가는 듯하다. 우리 역시 고3 수험생 시절을 겪어 왔기에 짐작은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은 더 가파른 벼랑에 서 있는 것처럼 조급하고 힘이 들 것이다.


 그 긴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언니는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항상 등급도 잘 유지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을 가졌는데, 왜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언니의 말이 이해가 잘 안 갔다. 언니가 말하길,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시험 당일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그리고 대학 면접도 정말 신기했던 게 그 녀석이 수능 전 날까지 고치고 있던 학교 동아리 보고서와 관련된 질문을 하신 거야. 아니? 난 그날 수능 전 날 공부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그것만 붙잡고 있는 그 녀석이 얼마나 답답하고 미웠는지. 그런데 그 일이 그 녀석에게는 엄청난 행운으로 작용했던 거지.”

세렌디피티, 사람의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오늘 수업 ppt를 손보며 아침부터 분주하게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준비하다가 문득 아이들의 명단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찡하게 울다. 함께 수업하는 고2 친구들, 올 3월에 처음 만나 분기별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거의 첫 번 째 분기부터 마지막 분기까지 만나는 친구들도 끼어 있다. 내년에 고3이 되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잠시 잠깐 학교 수업을 들어가는 나도 이런 마음일진대, 일선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의 마음은 더 남다를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 일지 모르지만, 고3 일 년은 3월 첫 시작부터 더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 ‘자 이제, 시작할 거야’라는 준비 단계 없이 ‘준비 땅’ 신호 없이 그냥 달려야 한다. 12년의 모든 노력과 배움들이 이 일 년에 다 판가름 나기에 고3을 맞이하는 고2들의 표정은 남다르다. 수능을 치기 전에는 고3들이 방패막처럼 버티고 있어 긴장감이 어렴풋하게 전해졌지만, 수능을 치고 선배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방패도, 가림막도 없이 뻥 뚫려 있다. 부모의 재촉하는 시선, 주위의 관심들, 고3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등등, 겨울방학을 맞이하는 고2들은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고 서 있어야 한다.


 오늘 친구들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수업을 다 마치고 난 뒤, 이 ‘세렌디피티’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이 공부가 ‘뜻밖의 행운’이 되어 더 밝은 미래를 선사할지 모르니 끝까지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기를. 고2에게 희망을! 모든 수험생들에게 용기를!  이번 크리스마스의 축복과 함께 세렌디피티의 기운이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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