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2, 큰 애를 바라보며

by 하늘진주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주말 아침은 나만의 최고의 자유 시간이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고요한 새벽이면 정말 할 일이 많았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멍도 때리고... 누구에게도 양보하기 싫은 나만의 황금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그런데 고2 큰 애가 주말 학원을 등록한 이후, 그 행복한 시간은 사라졌다.


그 녀석이 신청한 학원 수업은 오전 9시 반에 시작했다. 집에서 차로 30분이 걸리는 위치에 자리한 학원이라 늦어도 오전 8시 5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매번 아이를 학원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남편도 힘들겠지만, 유난히 잠이 많은 큰 애를 깨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생각에 아들 이름을 다정히 부르다가 전혀 미동 없이 자는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나 결국 “너 알아서 해!”라는 짜증 섞인 푸념으로 깨우는 일이 마무리되었다. 떡볶이를 좋아해서 떡볶이를 사 준다면 누구든 따라갈 것 같고, 애지중지하는 핸드폰을 눈과 손에서 절대 놓지 않으며 머리만 대면 어디든 잘 수 있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올해 고2가 되는 우리 큰 애 녀석이다. 그 잠 많은 녀석이 주말 학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일에는 학사 일정이 엄청 빡빡한 기숙사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큰 애가 다니는 기숙사 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6시 기상에 밤 12시 취침이다. 핸드폰 사용은 하루 자기 전 20분만 허용되고, 다른 시간대는 컴퓨터와 핸드폰 같은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최신 기기들은 모두 금지된다. 게다가 기숙사는 6인 1실로, 고1, 2, 3학년들이 한 방으로 배정받는다. 같은 방을 쓰는 후배들은 수능을 앞둔 선배들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며 자신의 미래 고3 일상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곤 한다.


각각 학년이 다른 남자아이들이 한 방에 있다 보니 그들만의 기강이 자연스럽게 잡힌다. 일요일 저녁부터 금요일까지 아들이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군대에 몇 년 일찍 보낸 느낌마저 든다. 그런 영향일까? 1년 만에 큰 애는 한층 어른스러워졌다. 여전히 먹는 것을 좋아하고 2살 터울 동생과 투탁 거리고 어리광 부리는 것은 여전하지만 자기 공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 더욱 단단해졌다. 내가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할 때마다 이제는 그 녀석이 엄마를 다독거리기 시작한다.


올해 큰 애의 학교는 S대 수시 성적이 좋지 못했다. 우리나라 최고라는 S대 실적만 봤을 때 수시 0명, 정시는 19명. 원래 정시가 강한 학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년 실적과 비교해 봐도 그 학교에서 이렇게까지 S대 수시 성적이 안 나온 일은 처음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의 도입으로 각 학교들의 특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아 생긴 영향인 듯 싶은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특히 이 학교는 워낙 공부 잘하고 똘똘한 아이들이 모여 경쟁하다 보니,1점, 2점의 아주 사소한 점수로 아슬아슬하게 아이들의 등급이 결정되었다. 그만큼 학교 아이들 간의 내신 경쟁이 치열했고 살벌했다.


올해 입시가 끝나고 간간히 들리는 일반고들의 좋은 수시 결과에 처음으로 이 학교에 보낸 것을 후회했다. 편하게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좋은 조건의 학교를 뿌리치고 아이와 함께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은 좀 더 아이가 자기 주도적인 학습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생각이었지만, 큰 애가 고입 원서를 쓰는 시기에는 그 선택이 맞는 것 같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정말 다행스럽게도 큰 애는 빡빡한 학사일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잘 적응해 주었다.

큰 애는 학교의 S대 수시 결과를 보고 걱정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원래 자기네 학교는 정시 학교였어요,

우린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지원했던 거 아닌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 한번 믿어 보세요.


학교를 열심히 편드는 아들의 목소리가 귓구멍 속으로 파고든다. 순간 그 녀석의 모습이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쓰앵님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런 설명을 듣고 조금 안심한 듯한 나를 보며 아들은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솔직히, 올해 우리 학교 수시는 망했어요. 내년 선배들의 결과를 두고 봐야죠."

그러면서 자기의 올해 고2 내신은 잘 안 나올 수 있으니 일찌감치 미련을 버리란다. 그 참!


만일 다시 큰 애의 중3 겨울방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들과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렇다고 한들, 지금의 선택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은 시련 앞에서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한다. 큰 애는 처음으로 겪는 시련 앞에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다. 그런 아들에 비해 난 아직 어른이 덜 되었나 보다. 나이를 먹을수록 겁만 많아지고 점점 움츠려 드는 일이 많다. 살아온 세월은 아들보다 더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자꾸만 인생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늘어만 간다.


큰애는 자신의 결정을 믿고 어느새 내 손을 벗어나 용기 있게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자꾸만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난 지금의 내 삶과 마음을 온전하게 책임지고 있는 진짜 어른인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선택의 길목 앞에서 서는 일이 많고 책임질 일도 많아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올바른 결정을 할 자신이 있는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선택들을 경청하고 수용할 준비는 하고 있는지 자꾸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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