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망곡마을

제0회 한산섬에 필연(必蓮)

by 주는남자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몇 해 전 통영시 강구안 상권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했던 친구의 전화였다. 저녁에 술한잔 하는게 더 익숙한 친구인데 점심을 함께하자고 하니, 뭔가 곤란한 일이 있나 싶었다.


죽림의 한정식집에서 만난 친구는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 대신 점심을 하게되서 아쉽다는 말을 안부 대신 전하며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산도 내 주민자치조직인 한산푸른등대청년회(이하 청년회)에서 활기가 사라진 망곡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작년부터 마을의 논밭에 연꽃을 많이 심어두고 축제를 개최하려고 하는데 마을 내부적으로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할 역량이 없으니 역량 강화 교육과 축제 개최를 지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곤 사업비가 얼마 없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당황스러운 예산을 꺼내들었다. 이 일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한산도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과 어떻게든 수익이 남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예산이 워낙 작은 터라 마을 축제 개최에 대한 역량강화 교육은 회사 내부에서 직접 진행하기로 하고 일방적인 교육 보다는 소통에 중점을 둔 워크샵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다. 교육 과정의 일부로서 마을축제 개최가 교육의 결과물이 되게끔 교육과정을 기획했다.


섬 지역의 여러 사업과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절차와 시간, 사람과 사람간의 문제가 얽혀있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섬이라는 특성상 일이 늘어진다고 잠시 밖에 다녀올 수도 없고 정해진 일정 외 추가로 머물기에는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섬 주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섬 사업의 성패는 주민들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간절한 일인지, 왜 이 일을 진해해야 하는지를 주민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에 달려있다.


한산도의 주민들과 이야기해보니 망곡마을의 안타까움이 보였다. 청년회와 이야기 해 보니 한산도는 역사 유적을 제외하면 뚜렷한 관광콘텐츠가 없는 것 같아 가장 활력이 필요한 망곡마을을 한산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싶어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청년회에서는 주인은 있지만 버려지듯 방치된 논밭의 주인을 찾아가 일일이 설득하고 통영시청과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연꽃을 심어야 하는 이유를 주장하여 작은 예산을 받아 방치된 논에 직접 연쫓을 심었다. 현장을 가보니 정말 열심히도 심어두었다.

IMG_9150.JPG
IMG_9153.JPG
한산도 망곡마을의 연꽃들, 정말 열심히도 심어두었다.


이 멋진 연꽃을 중심으로 어떤 축제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축제를 어떻게 개최할지에 대해 섬 주민들과 오랜시간 고민했다. 계약상으로 역량강화 교육은 4회뿐이었지만, 한번 들어간 섬에서 나오는 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당일 배편이 허락하는 한 늦게까지 망곡마을에 머물며 주민들과 어떤 축제를 만들지 고민했다.


"축제 뭐 별거 있어~? 우리가 재밌게 즐기면 되지~!" 교육 중 나온 주민의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맞지, 맞지 , 백번 맞는 이야기지, 우리가 재미있고 즐기는 행사가 되어야 오는 사람도 즐겁지. 주민들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시작하는 축제, 우리가 즐기는 축제로 만들자고.


그제서야 주민들의 이야기가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이전까지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고민하고 주민들에게 묻고 다녔는데, 이제는 쏟아지는 의견을 정리하기 바쁘다. 순식간에 마을 축제 기획자와 매개자, 사회자, 음식담당, 오락담당이 정해졌다. 크고 작은 의견을 결대로 나누고 모아서 정리한 뒤 가장 즐겁고 효과적인 행사의 방향을 잡았다.


1회차 교육_사진 (4).jpg
240710_4회차 교육_사진 (7).jpg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도 아니고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도 부족하니, 우리들만을 위한 축제의 시간을 갖자는 방향이 정해졌다. 한산도 주민들조차 망곡마을 연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가 정말 멋들어지게 즐거운 축제를 만들어서 일단 한산도의 주민들에게 알리자는 취지로 "0회"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 다음부터는 우리팀 막내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행사의 전반적인 컨셉과 분위기를 막내가 만들어 나갔다. 포스터를 만들고, 초청장을 만들고, 행사 세부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니 망곡마을 축제에 진심이 느껴졌다. 이제는 빠져야 할 때다. 이렇게 막내가 열심히면 내가 할 일이 없다. 그저 너무 초점이 어긋난 것이 있으면 그런 것만 잡아주면 막내의 열정이 모든 것을 커버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긋남까지도 막내의 자양분이 될 테니 이조차도 잡아줄 필요가 없다.


photo_2024-09-02_22-26-28.jpg
photo_2024-09-02_22-25-44.jpg
photo_2024-09-02_22-25-41.jpg


근사한 초청장을 받아보니 행사가 기대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막내는 이미 한산도 망곡마을 최고의 '홍반장'이 되었고 그 열정은 한산도를 넘어 발주처까지도 닿았다. 덕분에 발주처에서도 영상제작을 지원하고 행사에 적극 참석하겠다고 한다.


기다리던 D-DAY, 해질녘 망곡마을의 여름 축제가 시작되었다. 조금 더운 감이 있기는 했지만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50여명이 모였다. 생각보다 많이 왔다. 발주처에서도 참가해서 망곡마을 연잎밥 맛도 보고 노래자랑에도 참여하고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민들은 우리에게 고생한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망곡마을이 이렇게 생기 가득한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는 이야기까지하신다. 사실 사업 대상지를 망곡마을로 잡은 것은 우리의 결정이 아니었음에도 기분이 좋다. 이 좋은 기분을 청년회 회장님께 전달한다. 회장님 덕택에 우리가 칭찬을 받아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칭찬과 격려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IMG_9160.JPG
IMG_9176.JPG
한산도 망곡마을의 연꽃
IMG_0511.JPG
IMG_9268.JPG
수제 소원등과 망곡마을 사진전
IMG_9988.JPG
IMG_9972.JPG
IMG_0491.JPG
준비 중인 망곡마을 연잎밥과 요리들
IMG_0480.JPG
IMG_0612.JPG
축제를 즐기는 한산도 주민들
IMG_0081.JPG
IMG_9889.JPG
주민 노래자랑을 즐기는 한산도 주민들
IMG_0896.JPG
IMG_0729.JPG
소원등에 한산도 주민 소원 빌기
IMG_0956.JPG
IMG_0994.JPG
한산도 망곡마을 소원달과 소원등


행사가 마무리 되고 우리끼리 조촐한 뒷풀이를 가졌다. 자체적으로 이번 사업의 평가와 의의를 찾아보니, 터무니 없이 적은 예산에도 행사가 되긴 하더라는 깨달음과 몇몇 아쉬웟던 점들을 나누었다. 또한 마을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인상깊었다는 이야기를 모두가 이야기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었으면 성과의 반도 이루지 못했을 만큼 마을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인상깊고 감동적일 정도였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


한산도 망곡마을 연꽃축제의 미래는 어떨까?


특별히 더웠던 이번 여름이 앞으로 있을 여름의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전망이 있다. 계속 더워질 여름에 개최하고자 하는 행사인 만큼 더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전국에 크고 작은 연꽃 축제가 생각보다 많다. 이들과의 차별점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한산도 망곡마을 연꽃축제가 여름밤의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한산도는 통영에서 손꼽히는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섬이지만 여름 휴가철 해수욕을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에 입도객이 집중되어있다. 콘텐츠라고 할 것이 이순신 장군 역사자원인 제승당과 해수욕, 낚시 정도밖에 없는 섬이다.


한산도의 깊은 골짜기, 바다가 보이지 않은 깊은 곳 어딘가에 있는 새로운 세계의 느낌을 주고싶다. 마치 영화 빅피쉬의 한 장면 처럼 조금은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낭만으로 가득한 여름밤에 취해 현실과 비현실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