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편에’라는 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형편에 맞게 살고, 형편에 맞게 생각하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형편에 맞지 않는 과소비는 조심해야겠지만.
뒤돌아보면 스물여덟 살 때 첫 배낭여행을 유럽으로 떠났다.
형편이 좋아서 떠난 게 아니라
시간과 경험에 더 큰 비중을 두었고,
그 선택은 형편을 넘어선 결정이었던 것 같다.
형편을 뛰어넘을 때 모아진 것들이
결국 추억이 되었다.
일상을 추억하며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생각조차 형편에 맞는 행동만 하다 보니 특별한 날을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형편은 본드와 같다.
현실에 나를 붙여 버려
흘러가는 대로 살 수밖에 없게 만든다.
현실에서 형편을 뛰어넘는 일은
본드를 떼어내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하지만 형편의 본드도
처음이 가장 힘들 뿐, 계속 떼다 보면 잘 붙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현실과 형편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요즘 나는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다.
내가 생각했던 업무와 하루를
스스로 마무리하고 싶었고,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현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마주치는 지점에서의 뺄셈과 덧셈은 나의 몫이다.
인도 사막의 낙타 투어.
형편을 벗어나고 싶다면, 오늘이 어제와 달라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