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흔적.
필리핀은 약 380년의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겪은 35년의 일본 식민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다.
스페인 식민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인트라무로스는 스페인 시대에 만들어진 성벽 안의 도시라고 한다.
필리핀은 380년 동안 스페인, 미국,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이곳에는 여러 문화가 뒤섞여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긴 시간을 사람들은 어떻게 버텨왔을까.
우리는 35년의 일본 식민지 지배의 흔적도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인트라무로스를 걸으면서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페인의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벽 도시의 거리 옆에는 여전히 빈민가가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골목 깊숙이 들어가 보았을 텐데, 아이들에게 가방을 빼앗길 뻔한 일을 겪고 나니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필리핀은 긴 식민지의 아픔을 겪은 뒤에도 독재와 빈부 격차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벗어날 수 없는 식민지 같은 마음이 남아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 역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어떤 ‘식민지 같은 마음’이 내 안에도 있을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홀로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의 여운은
아마도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