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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Oct 08. 2020

과학을 믿으십니까

과학의 불확실성에 관하여



흔히 과학은 절대 진리이며 늘 확실성을 갖는다고 여겨진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 믿음에 동조할 것이다. 여기서 과학을 향한 믿음은 잠시 뒤로 하고, 질문을 하나 남기고 싶다. 당신은 실험실이 자연을 얼마나 잘 재현한다고 생각하는가?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정말 곧이곧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19세기 유럽에서는 한 가지 논쟁이 발생했다. 자꾸만 전깃줄을 끊어내는 번개에 대비하기 위해서 피뢰침을 어떻게 제작하고, 얼마만큼의 간격으로 세울 것인지의 문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올리버 로지라는 물리학자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작은 규모의 번개를 만들어낸 후 넓은 표면적을 가진 피뢰침을 제안했다. 그러나 번개와 관련된 직접 경험이 많았던 현장 엔지니어는 로지의 실험이 ‘진짜 번개’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반박을 가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피해 입은 토지와 양떼에 관한 실험실 연구 역시 실제 토지와 양이 처한 상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과학 연구에 대한 목양업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꿀벌 개체수 감소와 농약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나, 제왕 나비와 Bt 단백질이 삽입된 유전자 변형 옥수수, 제초제, 그리고 기후 변화와 관련된 연구 역시 비슷한 이유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말았다.



위 사례들을 보면, ‘과학 실험’이라는 사실 자체가 언제나 세상에 대한 정답을 보장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실험 역시 여타 사회적 행위들이 그러하듯 신뢰와 설득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실제 현상의 복잡성을 제거하고 연구 대상이 될 변인을 설정하는 과정, 즉 자연을 실험실로 데려오는 과정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한, 과학 연구가 실제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판단하고자 할 때, ‘잘 반영함’의 기준은 무엇이며 이는 누가 설정할 수 있는가? 각종 과학 논문 심사 위원회와 학회의 권위는 얼마나 신뢰할 만 한지에 관해서도 대중의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 연구 결과가 늘 내재적으로 확실성과 이로 인한 보편성을 지닌다는 가정은 특히 건강 문제와 결부될 경우  가지 층위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첫째로, 과학의 확실성 및 보편성은 경험적 사례를 토대로 과학 연구 결과를 불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의심받는다. 대표적으로는 밀양 송전탑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연구자들은 고전압 송전선의 전자기파가 암과 같은 질병을 야기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며 주민들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눈에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자신들의 경험과 직관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고, 연구 결과에 대한 불신은 치열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백신 논쟁 또한 과학의 확실성과 보편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자폐증 아이를 둔 일부 부모들은 MMR 백신과 타 백신 속 수은 방부제등이 자폐증을 유발했다며 미국 ‘백신 법정’에 소송을 신청했다. 주류 의사들이 자폐증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됨을 주장했고, 백신 법정 역시 의사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5년에는 9만 5000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MMR 백신과 자폐증이 무관함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등장하였으나,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역학적 데이터가 모든 사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의 내재적 확실성과 보편성을 의심하게 되는 또 다른 층위는, 보편성이 자본과 권력에 기대어 지나치게 쉽게 완성되는 사례에서 비롯된다. 『질병판매학』[1]이라는 책에도 나오듯이, 2001년 미국에서는 고혈압 진단 기준이 대폭 하향 조정되었다. 그 결과 시계열적 변화와 상관없이 고혈압 환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혈압 진단 가이드라인 설정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일부가 제약회사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은 이러한 배경을 인지하지 못하고 의사에게 고혈압 진단을 받은 뒤 바로 약 복용을 시작했다. 앞 문단의 사례와 반대로, 건강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과학은 종종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된 의도와 무관하게 절대 진리로서 작용한다. 졸지에 고혈압 환자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고혈압 진단 기준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특정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이어트 보조제로 알려진 가르시니아도 과학적 연구 결과의 확실성과 보편성이 자본이나 언론에 휘둘릴 수 있는, 탈부착 가능한 특성임을 드러낸다. 가르시니아는 미국 ‘닥터오즈쇼’에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것을 막는 원료로 소개된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도 가르시니아를 생리활성기능 1등급으로 분류했었다. 다이어트 식품 업계에서는 각종 가르시니아 함유 제품을 출시했고,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단골 멘트와 함께 온갖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르시니아가 함유된 제품을 소비하고 있지만, 다이어트에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임상 결과는 부족하다. 미국에서는 섭취 후 간 손상 사례도 존재했다. 실험실 밖으로 나온 가르시니아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확실한  없다.



과학적 연구 결과가 실험실을 나와 현실 세계에 적용되는 과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거나 투명하지 않다. 특히 건강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는 복잡성이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이유로, 실험실 밖에서 대중과 마주하는 과학은 ‘문화 바라보고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조금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과학자들은 엄격하게 대조군을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는 사실에 실험 결과의 확실성과 보편성이 붙박여 있다고 전제하기보다, 자신의 연구가 특정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현상을 총체적으로 포착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를 반추하는 태도로 대중 설득에 임해야 한다. 동시에 시민은 과학이 잘못된 방법으로 확실성과 보편성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시민끼리 연대하되 지나치게 감정적 접근은 배제하고, 언론과 마케팅에서 말하는 과학에 현혹되는 대신 여러 연구 결과를 직접 읽고 비교하며 비판적 시각을 키우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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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28



<과학기술학의 이해> 교재 8, 19장을 바탕으로 쓴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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