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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Oct 29. 2020

융합과 리더십

테크노사이언스 속 창의성의 조건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6가지 핵심역량을 제시하였다. 그중 하나는 창의적 사고 역량으로,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창의성은 혁신적 문제 해결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분야에서 특히나 강조되며, 이에 테크노사이언스에서 창의성의 중요 조건인 융합과 리더십이 대두되고 있음에 주목해보자.



     융합이라는 개념은 최근 시공간을 막론하고 강조되어왔기에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합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혁신적인 발견, 혹은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한 사례들은 대부분 융합의 힘을 빌렸던 것이다. 서로 다른 과학 분야 간 융합 사례로는 바이러스 유전학 전공자인 왓슨과 물리학 전공자 크릭이 결정학 및 생화학 지식을 사용하여 DNA의 나선형 구조 및 결합방식을 규명한 일이 있다. 같은 분야 내 융합 연구의 성과로는 코언과 보이어가 학회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박테리아 플라스미드를 활용한 DNA 클로닝에 성공하고, 유전공학의 시초를 다지게 된 사례가 있다.

     

     융합은 특히 전혀 구조화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필수적이다. 한 가지 관점으로만 파악해서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행위가 중심축이 되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다학제적 협력이 요구된다. 예컨대 원자력발전과 관련하여 발생한 거대 문제로는 핵폐기물의 처리 방안이 있다. 미국 산디아국립연구소는 1만 년 동안, 즉, 처리 기술이 더욱 고도화될 동안 어떤 후속세대도 처리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학제 전문가들로 패널을 구성했다. 핵폐기물 격리시설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재료 공학자, 건축가, 인류학자, 언어학자, 천문학자, 디자이너, 물리학자 등이 참여했고, 다방면의 지식, 경험, 통찰을 토대로 전례 없는 디자인이 등장했다.

 

     산업과 인문학의 융합 또한 끊임없이 강조되어 왔다. 인간의 선택과 소비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중요성을 견지한 대표적 사례로는 애플이 있다. 애플 제품이 소비자들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떠한 공명을 유도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 고유의 감성을 제품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애플을 세계의 정상에 올린 스티브 잡스는 철학이나 캘리그래피 공부 등을 통해 인문학적 시각을 겸비하고자 노력했다. 레고 회사 역시 소비자를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전개되는 가설 및 연구에서 벗어나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기획했다. 그들은 레드 어소시에이츠라는 인류학 기반 컨설팅 회사에 자문을 요청하여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인문학을 적극 활용한 결과는 세계 완구 시장에서 레고의 점유율이 말해준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자동차 사고의 주원인이라 지적되어온 주의분산을 단순 통계적 접근 대신 민속 방법론과 대화분석을 토대로 재범주화하여, 기존 교통사고 예방 프로그램의 한계를 도출할 수 있었다.

 

      테크노사이언스와 인문학의 '탐구 방식'의 융합 역시 적극 요청되고 있다.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세계를 단편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과 함께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복잡하며 다양한 행위자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들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잘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다시 과학 분야 내 창의성에 눈을 돌려 보자. ‘실험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연구하고 협력하는 과학 분야에서는 창의적 결과를 내기 위해 특히나 강조되는 리더의 자질이 있다. 누군가는 비인간을 주로 다루며 각자의 과업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면 되는 ‘실험’의 특성상, 뛰어난 리더가 꼭 필요한지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하나의 연구를 위해 다양한 세부 분야 전문가가 필요함에 따라 과학계에서의 협동 연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또한, 집단지성이라는 개념도 있듯이 협동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지식이 방대해지고 오류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협동연구의 확산에 따라 자연스레 다양한 전문가 간 상호작용이 잦아졌고, 이러한 상호작용들을 적절히 관리할 중재자가 필요해졌다. 특히나 실험실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과감히 도전하고, 실패해도 그 아이디어를 쉽게 폐기하지 않는 것이 그 어떤 분야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실험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한 리더의 통찰력과 공정한 결정, 희망적인 태도를 토대로 한 신뢰 구축이 더욱 강조된다.



     거대과학을 위한 리더십도 별도로 다뤄질 수 있다. 최근의 거대과학 네트워크는 전례 없는 수의 과학자와 대학, 각국 정부의 지원을 포괄한다. 또한 달성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고도화되어 있기에 대체로 연구 프로젝트가 장기간 진행되고, 전개 단계마다 최우선 과업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 학문적 언어를 가진 네트워크 속 행위자들을 적절히 중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리더의 자질이 벤치 과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강조된다. 나아가, 과업 진행 단계 별 리더 교체의 필요성 또한 존재한다. 거대과학의 대표적 사례인 맨해튼 프로젝트와 라이고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연구 구상 및 정부 설득 단계, 연구 실행 단계, 최종 마무리 단계 각각에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역량이 크게 달라졌고, 이에 따라 적임자가 매번 새롭게 선출되었다.



      본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질문이 있다. 먼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할 테다. 이때 테크노사이언스에서의 '일정 수준의 지식'이나 '전문가'의 정의와 기준은 무엇인가? 다음으로, 융합연구가 힘을 갖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인가?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학문적 언어 간에 공명이 이루어지는 기제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일반 조직이 아닌 연구팀에서는 리더십보다 팔로어십이 조금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연구팀이라는 특수 조직에서는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과업에 임하고 리더의 지휘에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며 과업에 열정을 갖는 팀원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라는 의문과 동시에, 연성학문과 경성학문 연구실 별로 그 중요도가 다르게 판단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과학기술학의 이해> 수업 제출용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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