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네스장 Feb 19. 2021

돌고 돌아 결국은 소고기

시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시어머니 생신날이 있기 전주말은 전체 가족들이 모여 외식을 하고 케이크 세리머니를 한다. 그래도 정작 생신 당일은 그냥 지나치기에도 뭣하고 아무것도 안 해드리기도 섭섭한 상황이 된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출근하는 내가 신경 쓸까 봐 미리 갈비탕까지 사다 놓으시고 본인 생일 아침에 먹을 거라며 준비를 다 해두셨었다. 나이가 들면 미역국이 아니라 소고깃국을 먹는 것이라고 하셔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전날이라도 소고깃국을 끓여놓았다가 아침에 차려 드렸었는데, 그마저도 못 해 드렸던 터라 더 마음이 쓰였다.

 

퇴근길에 뭘 좀 사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무심하게 회식이 잡혔다고 하고, 아들도 학원에 가서 늦게 오는 터라  어머니와 둘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었다. 아들과 손자가 없는 저녁 식사는 분명 대충 차려 먹자고 하실 것이었는데, 그런 상황이 서글프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 소고기 사 왔어요!!’  

‘둘이 먹으면 실컷 먹겠네, 같이 묵자!!’



결국 집에 들어가는 길에 횡성한우집 채끝 한팩을 샀다.

 내가 소고기를 가지고 집안에 들어서자, 적막이 흐르고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깨지고 혼자 방에 계셨던 어머님이 나오시며  집안에 활기가 조금씩 살아났다.


어머니는 버너를 꺼내고 야채를 준비하고, 분주하게 차릴 준비를 하신다.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역시 소고 기지!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초창기 개그콘서트에 ‘어르신’이라는 코너가 떠올랐다.

코너에 나오는 소고기 할아버지는 좋은 일이 있든 슬프고 아픈 소식이 있든 결론은 ‘소고기 사 묵겠지~’하며 인생을 달관한 멘트를 날리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어머니도 그 소고기 할아버지 같으시다.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아프고 난 후,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어머니는 소고기를 사 오시곤 했고, 소고기만큼 어머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음식은 없는 것 같다.


어떨 때는 그 고기 타령이 심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고기를 자주 먹었던 것 같은데도, 고기를 못 먹어서 힘이 안 난다고 하실 때가 있어서이다. 어머님에게는 돼지고기 같은 다른 고기 심적으로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한참을 같이 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시절 힘들게 사신 분들은 소고기가 주는 심적 만족감이 커서 힘을 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가족 회식에서 한우 소고기를 먹기에는 너무 비용 부담이 커서 못 사드렸는데, 한팩의 소고기로 그간의 감사함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여든두 해 생신을 그렇게 축하해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고,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즐겁게 사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삶의 애환을 소고기로 푸는 그 시절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소고기만 있으면 허허롭게 웃을 수 있는 어머님께 조금 더 살갑게 대해드려야겠고 생각하고, 내년에도 꼭 소고기는 사드려야지 다짐하였다.


"열심히 하면 뭐하겠~ 좋아서 소고기 사 먹겠지~ 소고기 사 먹으면 뭐하겠~

기분 좋아서 더 열심히 하겠지~ 더 열심히 하면 뭐하겠~ 더 비싼 소고기 사 먹겠지~"


오늘 마트 장보기 마지막 순간에 어머님은 또 한우를 카트에 담으셨다. 도 그 나이가 되면 그럴까??  고 돌아 결국은 소고기 타령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