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찌 그리 태평이냐?
시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오늘 같은 날은 일찍 일어나야지, 너는 어찌 그리 태평이냐?, 나 없으면 김치는 어떻게 먹으려고?... 나 없으면 사 먹겠지... 에효....”
느지막이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흐느적거리며 나오는 나를 보자마자 어머님은 속사포처럼 쏟아내셨다.
벌써 주방에서는 어머님이 배추 속을 거의 다 바르신 상태였다.
"아... 이렇게 일찍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뱉어져 나왔다.
“너도 며느리 봐봐라, 깨울 수 있나? 일 가는 날은 일간 다고 못 깨우고, 쉬는 날은 푹 자라고 못 깨우고… 부모 마음은 그런 거다.”
성은 다 내시 지도 못한 채 어머님은 체념한 듯 말씀하신다.
이번 김장은 우리끼리 하자고 남편과 나는 어머님께 호언장담을 했었다. 코로나가 심하니 이모님도 안 오시는 는 게 좋겠다고, 우리끼리 하자고 큰소리를 쳐 두었던 것이다. 같이 시장에 가서 배추와 갖가지 속 재료를 사 오고, 재료를 다듬고 김장 속을 버무려 두는 것 까지 해두었다. 저녁쯤 어머님이 절인 배추를 씻어두시는 걸 알았고, 배추 속은 다음날 넣으면 된다고 하셔서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여섯 시 반쯤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을 때는 시작을 안 하고 있었다고, 그 후 깨어있으면서도 어머님이 일하는 걸 몰랐다는데, “나 좀 깨우지…” 하는 말에 “나도 몰랐어” 하고 만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통에 담긴 김치 위를 비닐로 밀봉하고, 뚜껑을 덮어 김치냉장고로 옮기고, 설거지 마무리하는 것을 돕고, 아침을 차렸다. 김장을 하며 웃고 떠들고, 김치 속을 버무리며 배춧잎을 떼어 서로 먹여주는 그런 김장날의 풍경은 생략되었다. 6포기 김장이기에 북적거리며 할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머님은 같이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서로 먹여주고 하는 시간을 기대하셨을 것인데 말이다. 어머님이 나에게 그 정도로 말씀하신 것도 정말 힘들게 토해낸 것이라는 걸 안다. 이번 일로 어머님에게 나는 태평인 며느리가 더욱 확실해졌다.
어머님과 같이 산지도 벌써 십사 년이 되어 간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어머님이 산후 꾸리를 해주셨을 때, 끓여주신 미역국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하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의견이 달라 많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해갔고 서로 맞춰 갔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어머님이 집에 안 계시면 허전하고, 당연히 같이 계셔야 하는 분이 되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혼자되신 후로, 여행을 갈 때도 항상 함께 간다. 호캉스를 갈 때도 방이 비좁지만 모시고 간다. 집에 혼자 계시는 것이 마음에 걸려 모시고 가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같이 있는 상황이 전혀 불편하거나 싫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을 같이 한다. 그렇게 같이 산다.
살림에 무심하고, 살갑게 챙겨드리진 못하지만, 큰일은 발 벗고 해결해드리려고 했고, 어머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어머님께 맞춰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머님은 내 눈치를 보고 계신 것 같기도 하다. 전셋집을 새로 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시세가 너무 올라 평수를 줄여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남편에게 같이 계속 살아도 되는지 물으셨다고, 본인이 폐가 될까 봐 걱정되고 내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된다고 하셨단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아프게 돼서 살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나도 걱정은 된다. 어머님께 살림을 의지하고 살아왔고, 어머님이 아프시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어머님을 잘 모실 수 있을지.. 그래도 그렇다고 어머님을 이모님과 사시라고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다. 어머님이 안 계신 집은 이미 내게 너무 허전하고 그 빈자리가 너무 클 것이다.
살림에 태평인 나 때문에 어머님이 더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걸 알지만, 모른척하기도 하고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 내가 애쓰기 시작하면 같이 살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이다. 핑계 같지만,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무심한 며느리, 태평인 며느리이다. 오늘 또 그렇게 태평인 며느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엔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 보다, 전기장판을 사드리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계속 같이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