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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Mar 26. 2021

미니멀 라이프 바라기

공간을, 물건을 비우려는 중이다.


버린 물건을 다시 꺼내 올 정도는 아니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맥시멀 리스트에 가깝게 살아왔다. 그때그때 치우기보다 쌓아뒀다가 한꺼번에 정리를 하는 편이었고, 책도 여러 권 꺼내놓고 읽는데, 다 읽고 서평을 쓸 때까지 책꽂이에 꼽지 못하고 여기저기 놓아둔다. 읽던 책은 내 주변에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 다시 꺼내 읽기 좋다고 생각해서이다. 옷은 매번 입는 것만 꺼내 입는데도, 몇 년 동안 입지 않았던 옷과 친정에서 받아온 옷들이 옷장에 한가득이다. 2년 전 이사를 하면서 많이 내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또 많은 짐들이 쌓여갔다. 공간의 크기만큼 물건은 더 급속도로 늘어간 것 같다.  


집주인이 실거주로 들어오겠다고 한 이후로 한동안 심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사 전에 최대한 짐 정리를 하자고 결심하였다. 우선 아이방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정리하여 당근 마켓에 올렸다. 3년 치 어린이 잡지와 물려받은 전집만 해도 200권이 넘짓했다. 다행히 잡지는 바로 연락이 와서 팔 수 있었다. 세계문학 전집은 너무 오래된 책이기도 해서 그런지 가격을 낮춰도 사겠다는 연락이 없었고, 동생에게 물어봐도 예전에 내가 준 책들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이의 책상 서랍에는 다 부서진 팔레트며 다 쓴 물감과 학용품이 가득하였다. 한참만에 전집도 팔렸고, 남편에게 물려받아 아이가 쓰던 쓰던 바퀴 달린 중역 의자도 당근에서 팔았다. 그렇게 아이방은 일차로 비움을 했다.


그다음은 거실장이 타깃이 되었다. 서랍이 세 개 있는 장으로, 갖가지 전자 제품이나 소형 가전 등을 사면 들어있는 매뉴얼이 마구잡이로 들어가 있었다. 불필요한 부속품이나 케이블도 나오고, 바로 벼렸어도 되는 설명서들까지 꽉 차 있던 서랍을 정리하니 종량제 봉투 20L가 거의 반틈이 채워졌다. 서랍 2개를 그렇게 정리하고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들어있던 나머지 서랍을 열였다. 대왕 딱지가 10개도 넘게 있고, 미니카와 장난감 박스들로 채워졌던 서랍은 이사 오면서 아이가 버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들만 남겨둔 것이었다. 미니카는 이제는 정리해도 되겠다고 하여, 이모님 손주에게 줄만한 것을 따로 담고, 쓸데없는 레고 부품과 나머지 장난감들은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거실장과 아이방 서랍에서 나온 물건까지 담으니 20l 종량제 봉투는 손잡이를 묶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거실과 책상 서랍만 정리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던 중, 비움 효과 책을 읽게 되었다.

살림과 정리에 대한 단순한 내용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을,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 명상을 하거나 집안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물건과 더러운 먼지를 비워낼 때 질문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정돈되지 않은 책상은 정돈되지 않는 삶을 만듭니다. 악순환의 일상이 거듭됩니다.'


우리 집 책상 위를 보았다.

거실의 책상 위에는 내가 읽다만 책과 아이의 문제집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책장과 서랍 안을 정리하면서 책상 위의 상태는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하다가, 책상 위의 것들을 뒤편 책장으로 꽂아야 정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거실 책장에서 오래된 지도부터 갖가지 필요 없는 서류 등 버려도 될만한 책이 한 수가 나왔다. 중고로 팔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은 시작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아이도 남편도 더 나은 상태를 만들고자 한 마디씩 거들며 의견을 내었다. 온 가족이 책장을 정리하고 책상 위를 말끔히 치우고 나니, 다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기분 좋음을 계속 느끼고 싶어 졌다.


주방 찬장을 열었다. 유독 쓰지 않는 컵이 많이 쌓여있었다. 사은품으로 받거나 예전 근무처 로고가 찍힌 머그컵까지 멀쩡하지만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 머그컵을 포함해서 10개도 넘는 컵 종류를 비우고자 했다. 브랜드가 있는 제품도 아니고 완전 새 상품도 아니어서 무료 나눔으로 올렸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좋은 물건들인데 무료 나눔 해줘서 고맙다며 복 받을 거라고 덕담을 들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평수를 줄여가야 하는 실정이다. 집을 알아보고 난 후 남편과 나는 망연자실하였었다. 김치 냉장고도 안 들어가고, 거실 책장 하고 책상 등도 놓을 자리가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 방으로 써야 할 것 같은 방에는 침대도 못 넣을 것 같았다. 타워형이어서 그런지 우리 살림을 넣기에는 불가능한 구조였다. 좀 더 오래된 구축 아파트는 큰 평수도 가능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평면이 이상한 것은 둘째치고 매물이 아예 없었다. 다른 부동산에서 소개해서 보게 된 집은 그나마 가능성이 보였다. 판상형 구조여서 배치가 거의 비슷하고 방이며 거실이 조금씩 작아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참 더 많이 정리해야 한다. 남편은 큰 평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지만 공간을 줄여가는 만큼 짐도 간소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화장대는 일주일 동안 정리했다. 어디서 받았는지도 모를 샘플이며 잡다한 쓰레기가 매일 계속 나왔다. 화장품이 놓였던 곳 틈틈이에 먼지가 많이 쌓여있었다. 매일 버릴 것을 찾아내고 매일 화장대를 닦으며 점점 정리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처음에는 화장 대위에서 시작해서 거울, 화장대 서랍 안, 상부 장안, 하부 장안까지 정리하였다. 완벽하게 비워냈다고는 할 수 없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남겨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움 효과'에서 작가는 묻는다.

'인생이란 여행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순조로운 삶의 기운은 당신이 일상에 대해 의미 있는 만족감을 느낄 때 찾아옵니다. 비움을 통해 내면을 돌아보고, 내 욕망에 대해 솔직해지며, 불필요하고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에너지 낭비 없이 내 꿈에 다가가고 있다면 당신은 순조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길은 험난 할 것 같지만, 간소하게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가볍게 살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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