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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Jul 20. 2021

셋이 떠난 여행

시어머니와 중2 아들과 함께

코로나 이후 그러니까 1년도 넘게 가족 여행을 가지 못했었다. ‘좀 가볼까?’ 하면 확진자가 퍼지고, 들쑥날쑥한 등교 수업에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집콕의 일상이 계속되었었다.     

그나마 우리 부부는 자전거를 타면서 여행의 갈증을 해소해 왔었지만, 어머님은 계획했던 이모님과의 여행이 무산되면서, 답답함에 더위까지 겹치자 컨디션이 점점 안 좋아지시는 것 같았다.           

안되겠다 싶어, 한 달 전쯤 강원도에 숙소 예약을 했더랬다. 아이의 시험이 끝나는 주는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이라 다행히 어렵지 않게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또 그맘때쯤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고도 일주일이나 여유가 있으니,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남편의 귀국 예정 전날, 전화가 왔다. 남편은 '옆에 엄마 있어?' 하며 조용한 곳에 가서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가며 통화를 이어갔다.   

  

'왜? 무슨 일인데?'     

'음.... 출장이 연장될 것 같아. 빠르면 일주일, 아니면 열흘 정도...'    

 

'뭐?? 왜???'

'일주일이면, 여행 일정은 못 맞추네?.... 어떻게 하지? 취소해야 하나?'     


‘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엄마한테 잘 얘기해줘, 섭섭하지 않게..., 아니면, 나 빼고 다녀오던지.'    

 

'뭐?? 우리 셋만???? '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남편 없는 여행이라니,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평소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봤지만, 당연히 남편과 함께였다. 운전이며, 식사 장소며 남편은 어머니와 우리 식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을 준비했었다. 날짜를 미루자니, 숙소는 추첨제로 바뀌게 되어 원하는 날짜에 배정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아이도 본격적으로 방학 특강에 들어가게 되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취소하거나, 독박 여행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고속도로 운전을 혼자 할 생각을 하니 가기 싫었지만, 처럼의 나들이 기회를 포기하자니 기운이 빠지고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커졌다. 어머님은 어디든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시니, 내 마음 내키는 데로 계획해보자 싶었다.  '그래, 그냥 가보지 뭐!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쉬다 오면 되지', 결심을 하고 어머님과 아이에게 이야기하였다.     

어머님은 취소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을 반응을 보이셨다. 남편과는 이미 이야기되었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던 어머님의 쇼핑 계획을 그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강원도 감자도 사야 하고, 수산시장에서 젓갈도 사고 싶고, 돌아오는 길에 홍성에 들러 고기도 사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셨던 것이다.

중2 아들은 그냥 가지 말자고 하다가, 학원을 하루 빼고 가서 쉬자고 꼬시니 쉽게 넘어왔다.

그렇게 온전히 나의 의지로 독박 여행을 결정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서울 날씨는 38도까지 치솟는 등 폭염이 계속되었다.     

강원도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 서울에서 180km 떨어졌다고 이렇게 기온 차이가 날 수 있을지, 늦은 오후 기온이 19도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천국에 온 듯하였고, 힘들게 운전해 온 보람이 있었다.      

저녁은 황태찜로 결정. 전에 왔을 때 어머님이 맛있다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어, 많이 드시라고 '대'자를 시켰다. 그런데 어째 이번엔 그다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셨다.

“어머님, 맛 어때요? 괜찮아요?” 물으니,

“전에 만치 못하네... 가가 없어서 그런가? 가가 쪽딱 쪽딱 맛있게 먹잖아...” 하신다.

손주가 맛있게 먹어도, 같이 못 온 아들이 못내 아쉬우신가 보다. 사실은 나도 예전처럼 맛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맛이 변한 건지 같이 못 온 사람이 아쉬워 인지 아무튼 섭섭한 저녁 식사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청량한 공기와 리조트 내에 설치한 반짝이는 불빛 장식들, 그리고 바베큐장 앞에서의 공연 소리 덕에 남편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님께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 더우니 살 것 같지 그래!. 수야는 못 왔어. 셋이 왔지. 큰아들보다 낫다 그래!!'

웬일인지 큰 아주버님이 어머님께 안부 전화를 주셨던 것이다. 큰 아주버님이 며느리에게 뽀뽀를 해주라고 했다며 어머님은 나를 보며 웃으셨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칭찬해주시는 것보다 어머님을 모시고 한 번이라도 여행을 가시면 좋겠건만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살짝 어깨가 으쓱해지기는 했다. 나중에 생색은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시어머니와 중2 아들을 모시고? 떠나야 하는 여행 계획을 들은 인친님은 듣기만 해도 '어깨 결린다'는 표현을 써주셨다. 그 표현만큼은 아니겠지만, 운전을 혼자 해야 하는 부담이 제일 컸었다.

'엄마가 운전을 잘할 수 있을까?, 고속도로 운전하면 졸린데..'하고 내가 걱정을 하자, 아들은 클럭 마사지기를 미리 챙겨주었었고, 여행 내내 조수석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야기도 조잘거리고 조수 역할을 잘해주었다. 남편이 운전하면 내가 졸음을 참아가며 조수석에서 챙겨주던 생각이 나면서,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듬직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난 아들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여행을 결심하면서, 어머님을 최대한 맞춰드리려고 했지만, 나에게도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지 찾아뒀었고, 그곳을 가기 위해 이동경로를 미리 짜두었었다. 어머님이 이번 여행에서 원하셨던 시장 투어를 한 후에, 나는 묻지 않고 내가 가고 싶었던 강릉 테라로사 커피 공장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속초가 아닌 강릉을 간 것도 사실 그곳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으로 강릉 수산시장에서 먹은 회는 맛이 없었고, 바가지를 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커피 공장에 도착해서 독특한 건물과 인테리어를 구경하면서 꿀꿀한 기분을 날려버렸다. 소문으로만 듣던 게이샤 커피와 함께 나의 최애 디저트 티라미슈를 먹는 것으로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해줄 수 있었다.


서울의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여행 내내 날씨 요정이 도와주어, 멋진 하늘까지 즐길 수 있었다. 돌아가기 싫다는 아들의 투정을 달래주어야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시어머니와 중 2 아들과 며느리, 이 조합만으로 어깨가 결린다는 여행을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기에, 수고한  나에게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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