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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Aug 16. 2021

상상해봅니다

로망이 실현되는 날을


스르르륵 대리석 바닥을 굴러가는 캐리어의 바퀴는 거침이 없다.

리셉션 카운터 앞에 멈추었다가 룸키를 받아, 다시 스르르륵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는 경쾌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특유의 향을 느끼며 잠시 숨을 고른다.

문이 열리고 카펫이 깔린 복도에 들어서면 갑자기 묵직해진 캐리어를 힘주어 끌며 방을 찾는 시선이 바빠진다. 도어록에 카드키를 가져다 데면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밀리고, 닫혀있는 쉬어 커튼을 통과하여 은은한 빛이 들어오고 있는 방으로 들어선다. 도어가 닫히면 오롯이 혼자가 된다.


혼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러 가는 로망이 실현되는 날을  상상해 보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호캉스도 좋겠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내려놓고 오롯이 혼자되는 시간을 갈망한다. 집에서도 가끔은 혼자되는 시간이 생기곤 하지만, 굳이 호텔에 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가 김영하는 집을 두고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호캉스를 즐기는 이유를 호텔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상의 근심을 내려놓고 나를 최고로 대접해 줄 수 있는 공간에 가서 나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짐을 풀기 전, 여기저기 방의 사진을 찍는다. 전체 공간의 사진, 침대를 바라보는 뷰, 창을 바라보는 뷰, 반대로 문을 바라보게, 침대에서 티브이가 있는 벽을 바라보는 뷰를 찍고 욕실도 최대한 넓게 나오게 찍는다. 가구와 커튼, 바닥재질 등을 자세하게 관찰하며 클로즈업해서 찍는다. 직업병이다.

이렇게 다 찍고 나면, 구김 한점 없는 하얀 침대 위에 살며시 걸터앉는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침대로 뛰어들까도 생각해보지만 구김 없이 메이킹된 베드를 흐트러트리는 것이 싫다.

 

러지지랙(가방대)에 놓인 케리어를 열어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챙겨 온 노트북과 마우스, 키보드를 꺼내 정갈하게 정리된 책상에 둔다. TV에서는 객실에 들어올 때부터 호텔 홍보 영상과 함께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잠시 영상을 보며 혼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다 욕조에 물을 받기로 한다. 집보다 큰 욕조에서는 발을 쭉 뻣을 수 있어서 좋다. 익숙하지 않은 수전을 요리조리 만져보다가 적당한 온도로 조절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렇게 받아진 물에 입욕제를 풀고 몸을 담그는 순간, 온몸에 따뜻함이 퍼지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함께 녹아내린다.


호텔방의 정갈함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그래서 너무 화려한 디자인의 방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주고 배려가 녹아 있는 방이면 좋겠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으로 내 모습이 예뻐 보이면 좋겠고,  목욕 후에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마실 향이 좋은 차가 준비되어 있으면 좋겠다. 적당한 온습도가 소음 없이 쾌적함을 제공해주면 좋겠고 특히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예쁘면 좋겠다. 야경까지 멋진 뷰이면 더욱 좋겠다. 내 마음을 챙기러 간 것이니 핸드폰은 꺼둔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로망이 실현되는 날을 상상해보았다. 

로망은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을 말한다. 실현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꿈, 바람이지만 상상하면 기분 좋아지는 무언가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와 같은 로망을 가진 분들이 있을까? 실제로 그 로망이 실현된다면 각자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여러분은 어떤 로망(프랑스어:roman)을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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