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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Jul 14. 2022

안 샀으면 어쩔 뻔

명품가방 대신 저지른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렸다.


2020년 7월, 코로나로 온 세상이 옮작달삭 못하게 묶여버렸던 그 해 초여름이었다.


한해 전부터 계획해왔던 가족 여행이 물거품이 되고 답답한 일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확진자와 확 찐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는 명품 가방을 사주겠다는  남편의 약속도 포함되어 있었던 터라 계획하면서 즐거움도 크고 설렘도 더 컸었는데, 그런 계획이 무색하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점 더 온세계를 장악하고 나라 간의 이동이 금지되면서 여행은커녕 외식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워졌다.   


답답한 와중에 우리 가족에게 자전거 타기는 여행 대신 바람을 쐴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다. 한강변의 코스를 조금씩 바꿔가며 시도해보면서 답답함을 해소했다. 그러다가 좀 더 멀리 새로운 곳을 가고 싶은 마음에 자전거 캐리어를 마련했다. 나의 미니벨로는 접어서 트렁크에 넣고 남편과 아들의 육중한 MTB는 자전거 캐리어에 싣고 팔당으로 가서 남한강, 북한강 자전거길을  달렸다. 강변의 경치도 좋고 사람도 별도 없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즐거움에 우리는 점점 빠져들었다.

팔당에서 양평까지 30km 코스는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대치였다. 체력적으로 부족했지만 장비도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밟아도 로드바이크를 타고 추월해가는 자전거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힘에 부쳤다. 쫄쫄이를 입고 쌩쌩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이고 부럽기만 했다.

나는 막연히 부러워만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한참 전부터 자전거를 검색하며 비교 분석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러더니 나를 끌고 매 주말마다 자전거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내 자전거는 안중에도 없고 본인이 타고 싶은 자전거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슬슬 약이 오른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내 자전거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니, 혼자만 바꾸면 나는 어떻게 따라가라고… 안 그래도 미니벨로 바퀴가 작아서 얼마나 힘든데… ‘ 하며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게 우리 둘 다, 함께 탈 자전거를 찾아 헤맸다.


시마노가 뭔지 105는 뭣이고 울테그라가 뭔지, 카본 프레임이며 카본 휠이며 이런 사양들이 나의 관심사가 될 줄이야… 그저 모양 예쁘고 색깔 예쁘면 다인 줄 알았었던 내가 전동 기어는 무엇이고 수동기어는 무엇인지 비교하고 있었다. 그런 사양에 따라서 금액이 천차만별이었는데, 비싼 것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지만 그래도 한번 사면 오래… 아니 아마 평생 타야 할 수도 있는데… 어떤 사양을 사야 후회하지 않을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타보고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히나 코로나로 제품 공급이 월활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자전거 브랜드들이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 가지씩 알아보며 결정해 나가야 했는데, 우선 나는 알루미늄 프레임이 아닌 카본 프레임으로 업그레이드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존에 타던 미니벨로가 알루미늄 프레임이었는데 달릴 때 노면이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진동이 고스란히 팔목으로 전달되는 것이 힘들었었고, 또 무게가 가벼워져야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카본 프레임을 기준으로 그다음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 용도? 어떤 스타일의 라이딩을 원하는지 였다. 속도감을 즐기고 싶다면 에어로 바이크, 다양한 코스에서 장점을 발휘하는 올라운더 바이크, 좀 더 편안하게 즐기고 싶다면 엔듀어런스 바이크, 로드 바이크처럼 생겼지만 험로를 즐길 수도 있는 그래블 바이크가 있었다. 그 용도에 따라서 자세도 달라지고, 프레임의 형태, 타이어의 두께 등 세세한 것이 달라졌다. 나에게는 편안하게 즐기고 싶은 엔듀어런스 바이크가 딱이었다. MTB처럼 충격을 흡수해주는 샥이라는 장치가 있는 모델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이 모델을 탄 라이더가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말에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사고 싶어 졌는지 ㅎㅎㅎ. 아무튼 덕분에 사고 싶은 모델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브랜드 매장을 몇 군데를 가서 직접 모델을 확인하고, 색상도 정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블랙 바탕에 진 다홍빛 데칼(로고 그림) 이 있는 색상이었다. 딱 원하는 색상에 나에게 맞는 사이즈를 보유한 매장은 없었고, 일단 몇 군데 전화를 해서 예약을 걸어두고 기다려야 했다. 어떤 매장은 한 달 후면 소량이 입고될 예정이라고 했고, 다른 매장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하고… 다 상황이 다르고 불확실했다. 아니, 내 돈 주고 사겠다는데 이렇게 사기가 힘들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한 달 후쯤일까… 먼저 연락을 준 매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색상이 아닌 다른 색상이 입고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거라도 살까 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곧 포기하겠고 연락을 해드렸다. 내가 예약을 했지만 대기자가 많아서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매장에서 연락을 주었다. 딱 내가 찾는 자전거가 입고되었다고 ….

심장이 뛰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진짜 사는 건가? 저지르는 건가? 그런데 사도 되나? 생각해보고 바로 전화 주겠다고 이야기해놓고 한동안 고민을 하였다. 남편은 진짜 살 거야? 하면서 또 묻는데.. 그때까지 남편은 사고 싶은 그리고 살 수 있는 자전거를 찾지 못했었다. 너무 비싸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00백 대신에 사는 거야!! 이렇게 무언가를 사기 위해 열심히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기다린 적은 없었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나의 자전거(로드바이크)를 저질렀다. 자전거를 받아오는 날 어찌나 들뜨던지…  

남편도 곧이어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저질렀다. 내 것 보다 더 좋은 기어인 울테그라가 장착된 자전거이다. 아니 나는 명품가방 대신이라지만 당신은 뭐지?? 아 그래 여행 대신이라고 ㅎㅎㅎ

뭐가 됐건 그냥 열심히 타서 뽕뽑자. 많이 타고 건강해지면 되는 거지 하며 그렇게 우리 부부는 해외여행 대신, 명품 가방 대신 자전거 두대를 저지르고 헬멧과 쫄쫄이 자전거 복장도 한벌씩 저질렀다. 그리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비가 와도, 날이 좋아도  참 열심히 신나게 여기저기를 달렸다. 이미 뽕은 뽑은 듯하다.  


그때 그렇게 저지르지 못했다면  답답한 코로나 시국에 화병 나고 우울증에 걸렸을 수도, 확 찐자가 되어 굴러다녔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여러분이 잘 저질렀다 싶었던 것인 무엇인가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주는 저지름이라면 기꺼이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



#취향 매거진 7월호에 포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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