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아침에 모닝콜이었던 빗소리가 하루 종일 들리는 날.
다른 동네에서는 대피 준비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세찬 비바람이 부는 일요일.
날라리 신자는 비를 핑계로 온라인 미사를 드렸다.
오늘의 커피는 작은 저그에.
딱 한잔만 내릴 수 있는 도자기 저그.
아마 이게 내 첫 저그가 아니었을까.
주로 소스볼로 많이 쓰는데 오늘은 깨끗하게 씻어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책이나 그릇이나 옷 같은 ‘물건’ 그리고 음악이나 그림 같은 ‘예술품’들은 공통적으로 추억이 담긴 시간을 담아 두는 ‘저금통’이 된다.
오래된 팝송을 들으면 그 노래가 방송되던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 떠오를 때가 있고, 어떤 유명한 그림은 그 그림을 슬라이드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수업 시간이 생각나고, 좋아하던 책을 읽던 그 밤 내방의 노란 조명이, 옷걸이에 걸려있는 외투를 입고 걷던 어느 바닷가 추운 바람이 떠오른다.
시간을 지나 꺼내보면 더 아름답게 각색이 되는 추억들.
커피를 마시며 이 저그를 만들던 그날의 수 공방을 떠올렸다.
커다란 저그를 만들고 싶었으나 실력이 욕심을 따라 주지 못해 물레를 돌리며 흙덩이를 잘라 내고 잘라내어 결국 저만한 저그 하나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통통한 병아리 모양 같은 저그를 보며 들석 들석 수다와 웃음이 가득했던 몇 년 전의 어느 수요일을 기억한다. (수 공방 수요팀이었기에).
옛일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는 건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
어제 일은 기억 못 하는 단기 기억 상실인데 지난 일들의 기억은 참 또렷하다.
어릴 적에 내게 당신 옛날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얘기해 주시던 할머니.
나도 할머니처럼 지난 추억을 되잡는다.
내리는 빗소리가 너무 좋아 창문을 조금 열어 두고 바느질을 한다.
지금 만드는 것들은 아마도 완성된 뒤 인스타그램에 사진으로 남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내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겠지.
그래서 어느 날 들리게 될 비 내리는 소리에 지금 바느질을 하며 듣는 이 음악이 또 떠오를 것 같다.
오늘 빗소리와의 듀오는 티비 프로그램 “풍류대장”.
클래식과 크로스 오버 되는 음악들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판소리와 k pop의 크로스오버다.
빗소리에 마음까지 촉촉해진 일요일.
이 비와 바람이 지나면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워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지만 그래도 오늘까지는 빗소리에 행복해 있는 걸로.
다음 주에는 ‘삼 월 이’ 가 출동을 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