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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네스 Apr 20. 2024

'모집 인원 0명', 문해력 논란에 대한 마케터의 생각

'모집 인원 0명'이라고 썼다가 시청자를 기만하냐는 댓글과 수십 개의 기사를 낳는 유튜버, '금일'을 금요일이라고 알아 들어서 소통에 오류가 생긴 알바생, '사흘'을 4일로 이해한 친구, '심심한 위로'를 보고 왜 위로를 진심으로 해야지 심심하게 하냐는 사람. 요즘 뉴스에 적지 않게 등장하는 문해력 이슈에 관한 내용이다.


영화가 유튜브가 되고, 유튜브가 숏폼이 되는 과정에서 글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 밖이 된 지 오래. 그로 인해 기존에 쓰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나도 이전까지는 '요즘은 저런 것도 잘 모르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었다. 내 기준에서 봤을 때 우기지만 않는다면 '모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사용성을 공부하고 카피를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카피나 사용성의 특성상 어려운 말로 전문성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고객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도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문구를 작성한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도 '송부드렸습니다', '회신 부탁드립니다'와 같이 한자를 기반으로 한 용어를 정말 많이 쓰는데, 왜 쓰는 걸까?


물론 문해력이 낮아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언어라는 게 모두 다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모두가 잘 알아듣는다면 괜찮지만 못 알아듣는 사람이 생긴다면 '보냈습니다', '답장 부탁드립니다'라고 쓰는 게 낫지 않냐는 것이다. 철저하게 마케터의 시각으로 봤을 땐 그렇다.




한창 글을 쓰는 걸 공부하면서 문예창작과 출신의 회계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지금은 회계 일을 하고 계시지만 소싯적에는 깨나 글로 날렸었다고 하시길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동경의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잘 쓴 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도 술술 읽히고 이해가 되는 글이 잘 쓴 글일까요?


팀장님이 대답하셨다.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 제 생각엔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이상' 작가가 항상 거론되는데, 그 작가가 글을 그렇게 쉽고 잘 읽히게 쓰진 않잖아요.


바로 납득이 됐다. 이상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건 쉽게 안 읽히는 정도가 아니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가 핑 돌았던 경험이 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람들에게 쉽게 읽히고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말이 꼭 '정답'인 단순한 영역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한자 용어도 같은 맥락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엔 20년 동안 인사 업무를 하신 본부장님을 찾아가 여쭤봤다. 최근에 있던 '채용 공고 0명'과 같은 문해력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케터로서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그랬더니 한방 세게 맞으신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혼나면서 저런 한자 용어를 익혀왔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까지도 계속 써오고 계셨던 거고 저렇게는 아예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답습해 왔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굳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단 마케팅을 하면서 생긴 순수한 궁금증이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후에도 계속 정답을 찾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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