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서른셋. 바삐 걷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by 선량한해달


「바쁘게들 사는구나」


일본 여행을 다녀온 동생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비 오는 날에도 바삐 걷는 사람들이 참 많지.'


비 오는 날 오후, 쿠폰을 챙겨 집 앞 스타벅스로 향했다.

요즘 세상에 드문 종이 쿠폰인지라 쓸 일이 있을까 싶어 책장에 대충 던져놓았더니 노트 3개에 비틀려 걸쳐있다.


간신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구겨진 쿠폰을 들고

모처럼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 통유리 앞에 자리를 잡고 우산 쓴 동생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거의 같은 모습을 한 학생이

바쁜 걸음으로 등장했다.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주저앉아 가방을 뒤진다.

젖은 바닥에 내려놓은 가죽 가방 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거칠게 줄을 긋고는 다시 통화를 하며 사라진다.


'바쁘게들 사는구나.'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시간이 흘러간다.


아늑한 카페 안에서 무료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 화면에 선을 긋고 있는 나.


빠른 걸음으로 통화를 하며 비를 뚫고 가다

가방 속 수첩을 겨우 꺼내 선을 긋는 사람.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더욱 화면에 집중해본다.

이국적인 도시 풍경 속에서 남긴 이 한 장의 사진이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바삐 산다고.

너만큼이나 다들 바삐 산다고.


애매한 시간대의 비 내리지 않는 카페에서

생각에 잠겨 그저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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