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부부의 전쟁은 40대가 저물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맹렬하다.
친구들은 애정이 깊은가 보다, 아직도 서로 그렇게 관심이 많냐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나와 다른 세계의 상대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둘 다 자기중심적이니
도대체 우리는 어찌 된 인간들인가 싶다.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싸우고
기어이 같이 산다.
좋은 추억만 가득하고 서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행복한 순간만 있으면 좋으련만,
모자란 우리는 깎여나갈 것이 너무 많은 사람들인가 보다.
내 이상형은 한없이 넓은 바다 같은 사람이었다.
신혼까지는 꽤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실상은 공감제로 AI 같은 한 인간이
자존심과 똥고집을 장착하고는 내 마음의 평화와 일상을 파괴하는 자주포를 쏴댄다.
말이 안 통하는 남편이 너무 싫어서
'이혼이 답이지. 왜 같이 살면서 이렇게 싸우나'
하는 마음 시궁창 속으로 다시 들아간다.
이번엔 정말 결단을 하자.
짐을 쌌다.
보란 듯이 큰 캐리어를 꺼내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넣었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 세워놓고
아이들을 불렀다.
시궁창 냄새 펄펄 풍기는 엄마의 레퍼토리와 대단한 결심을 듣고
반복되는 싸움에 지겨운 듯한 첫째는 알았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둘째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물을 털어낸다.
금세 다시 가득 찬 눈물을 눈을 꼭 감아 주르륵 흘러 보내고
"엄마 나 질문이 있어."
"응 얘기해."
"엄마는 엄마 없이 자란 적 있어?"
할 말을 잃었다.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우리 엄마, 엄마가 생각났다.
말없이 고요히 모든 것을 인내하여
집안의 평화를 지켰던 사실상 모든 싸움에서 승자.
찰나를 기다리지 않고 질문이 이어졌다.
"엄마." "응?"
"엄마는 어른이잖아."
"으.. 응" 대답은 했지만,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엄마는 나보다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잖아. 어른이니까."
"................"
"엄마" "응?"
"엄마는 나보다 예배도 많이 드리잖아. 기도도 나보다 길게 하잖아."
"..............."
"엄마" "응?"
"엄마는 나보다 성경책도 많이 읽었지? 그렇지?"
"으... 응."
"엄마" "응."
"그러니까 엄마가 참아."
K.O.
아이들이 5살, 1살 무렵이었을 때다.
부부 싸움으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 5일 만에 돌아온 적이 있다.
물론 남편이 육아 휴직 중이라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이들에게는 한 없이 자상하고 재미있는 아빠였으니 걱정 없이 나가버린 것이다.
친구들은 쌓인 산후우울이 폭발하는 것이라고도 했고, 몸 상한다며 그럴 바엔 갈라서라고도 했다.
지금도 너무나 후회되는데,
다시 집에 돌아온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두 딸은 현관문 앞에 서서 러브액츄얼리 영화 주인공처럼 스케치북에 엄마를 그리워하며 그리고 써둔 메시지를 보여주고 서 있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엄마 사랑해요.
첫째는 며칠 동안 면역이 다 깨졌는지, 너무 울어서였는지, 눈 주변 점막에 고름이 껴있었고.
덕지덕지 노란 눈곱을 껌뻑거리면서도 활짝 웃으며 내 기분을 살폈다.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다. 평생 잊지 못할...)
아직 말을 못 하는 둘째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기쁨으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 안아주며 생각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아이들을 한 참을 안아주고 있었던 그때 이후로 우리는 잘 회복했고,
다시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내 인생에서 40대는 통째로 '실패'라고 도장이 찍힐 판이다.
어느 정도 안정되고 편안해진 삶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의 40대는 겉은 화려해졌을지 모르나,
광풍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흔들리고 요란하고 초라했다.
망망한 인생의 대해에서 나는 홀로 서있는 듯 아슬아슬하고, 때로는 처절했으며 외로웠다.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괴롭혀 자가면역질환과 갖가지 질병을 만들었다.
참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 늘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그것이 나라고 믿었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는 시간 늘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나를 보니,
똥고집에 자기중심적인 내가 보인다.
남편을 향했던 그 말들이 그대로 내 모습을 비춘다.
40대가 다 저물어 가는데 이제는 좀 알겠다.
지독히 싸우고 이겨야 할 상대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강인한 여자라 누구의 지지나 응원이 없이도 씩씩할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인정과 격려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부사이에 진심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해야 는다는 것을.
아이들은 내 곁에서 늘 반짝거렸다.
마치 하늘에 걸려있던 별들이 땅에 내려와 내 곁을 비추듯이
어린아이들은 미숙하기 그지없는 나를 엄마로 성장시키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
하나님이 모두를 지킬 수 없어 인간에게 엄마를 보냈듯이
엄마가 자신을 지킬 수 없을 때를 위해 천진한 아이들을 보내 지켜주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자격미달 엄마에게는 특전사 딸들로 추려서.
*그 동안 저의 첫 브런치북[40대 성장일기]를 사랑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다음 연재 북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