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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May 05. 2023

POLYGAMY (2)

카메루니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출근해서 오전시간이 다 지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여자들이 크게 싸우는 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처소독실 문 앞에서 내다보니 응급실에 몰아닥친 여자 두 명 중 한 명은 괴성을 지르며 울고 있었고, 괴성을 지르며 우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으려던 한 여자는 다른 사람에게 제지를 당해 두 여자는 분리되고 있었다. 울고 있던 여자가 왼손에 피를 흘리며 상처 소독실로 들어왔고, 그 여자와 함께 들어온 다른 사람이 내 손바닥에 핏덩어리를 올려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뭔지 모르고 얼른 트레이에 담았다. 피 흘리는 여자의 손을 펼쳐보고야 내게 준 그것이 '손가락'인 것을 알았다. 

대학병원 응급실 경력 3년 동안 봐왔던  끔찍한 외상 환자들이 생각났다. 술에 취해 지하철에 뛰어들어 허벅지가 잘린 채 왔던 중학교 남학생, 119 대원이 파란 김장봉투 같은 것에다 잘려나간 다리를 들고 들어오셨다. 술에 마취된 학생은 자기 다리가 잘린 줄도 모르고 쿨쿨 잠든 채 응급 수술을 들어갔었다. 그리고 한국 사장님 갑질에 못 이겨 목을 칼로 그었는데, 너무 잘 그어버린 바람에 기도절개가 된 채로 응급실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이 사람은 응급처치중에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또 벌목 작업하던 중에 쟁반처럼 크고 둥근 톱날이 머리통에 날아와 꽂힌 채로 왔는데 의식이 있었던 그 아저씨, CT에서 두개골이 너무 깨끗이 잘렸다며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환자, 190cm는 돼 보이는 거구 환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119를 타고 실려왔었는데 전신이 회칼로 포가 떠진 채로 살해되어 DOA로 실려왔던 조폭 등등... 수많은 환자들이 생각났다. 

그때 간호사 유니폼을 입은 나는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상황을 대하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감정에 동요되면 윗년차들에게 엄청 혼나고 갈굼을 당했기 때문에.... 사실 눈앞에 펼쳐진 외상과 상처부위가 너무 충격적이지만, 놀란 마음 안 들키려고 이리저리 응급실을 뛰어다닌 기억.


외과 닥터 꽈쵸를 호출하고 잘려나간 손가락은 수간호사에게 트레이채 넘겼다.


한국서도 수지접합은 타이밍도 중요하고 매우 섬세한 수술이라 어렵다. 여기서는 외과 과장 1명이서 온갖 수술을 다 하고 있고, 그런 수준 높은 수술은 기대할 수가 없기에 이 여자는 이제 평생 잘린 손가락으로 살아야 한다. 닥터 꽈쵸가 올 때까지 환자의 잘린 손가락을 지혈하고 있었다. 두꺼운 거즈를 대고 손가락 주변을 Saline으로 닦아주며, 손을 꽉 잡아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을 때 여자는 아까와 달리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같이 와 있는 여자가 설명하기를 지금 이 여자는 두 번째 부인인데, 첫 번째 부인이 아침에 찾아와 반지를 내놓으라고 싸우다가 반지를 끼고 있던 손가락 두 마디를 이빨로 물어 잡아 뜯었다 한다. 들으면서도 내가 들은 게 사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외상을 입거나 동물에게 물린 것은 봤어도 사람이 물어뜯어 손가락이 잘렸다는 건 , 나도 믿어지지가 않고 누구도 믿기 힘들 것이다. 


나는 일단 NS 500ml 수액을 정맥 주사하고, 여자를 상처 소독실에서 응급실 침상으로 데려와 눕혔다. 우는 여자의 등을 쓸어주며 지혈 중인 손을 잡고 있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다. 한참뒤에, 파상풍이나 감염 예방을 위해 항생제와 진통제를 챙겨주려고 약봉지를 꺼내는 중에 레지던트 2년 차 꽈쵸가 왔다. 그는 지금 외과 과장(닥터 포캄)이 수술 중이니 지혈 위해서 여기서 몇 땀 꿰매자고 했다. Suture(봉합)에 필요한 내가 가지고 있는 물품을 꺼내 주었다. 환자의 잘린 상처부위를 다시 소독하고, 꿰매기 시작했다. 환자와 보호자 꽈쵸는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결국 논쟁처럼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여자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봉합을 마친 꽈쵸를 소독실로 불러서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크게 한숨을 내쉬던 그는 맞다고 사람이 깨물어 잘라진 것이라고 하면서, 이게 일부다처제 문제라고 열변을 토했다. 남자는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할 때 반지를 끼워주지 않았단다. 하지만 둘째 부인을 꼬시려니 나이도 더 어리고 반지를 요구했단다. 무리를 해서 반지를 사주고 둘째 부인 삼았는데, 그 돈이 결국 첫째 부인과 아이들이 써야 할 생활비였단다. 일부다처가 합법이고 뿌리 깊은 문화라 하지만, 남편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본능적으로 여자들의 배신감과 시기, 질투는 이런 무시무시한 비극으로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도둑질을 하거나 죄를 지으면 마을 사람들이 때려죽일 수 있는 법도 있고, 우리 기준에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미개한 법과 관습도 남아 있기 때문에 죄와 잘못에 대한 응징의 수준이 상상 그 이상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손가락 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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