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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Jun 04. 2023

기절초풍할 수술

카메루니안

바푸삼이 정겹고 익숙하다. 난 서서히 카메루네, 카메루니안이 되어간다.


응급실에서 일한 지 7개월이 넘어간다.

상처소독을 담당하면서 simple Suture(봉합)할 일도 있고 해서 외과에 가서 좀 배워오자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2일은 수술실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바푸삼 도립병원의 외과에는 외과과장 닥터 포캄과 레지던트 닥터 꽈쵸, 이렇게 2명뿐이다. 이 두 사람 중에 닥터 포캄이 모든 수술을 진행하고 꽈쵸는 병동과 응급실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다.

현지의 인력난은 정말 심각하다. 레지던트라고 하지만 수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꽈쵸는 다른 현지동료들과 달리 매우 학구적이고 카메룬의 의료발전에 큰 책임을 갖고 있는 의사라서 내가 도울 수 있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나 도구를 구해주고 싶다. 그는 내가 현지에서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는지와 말라리아 안부를 물어주는 유일한 의사라서 많이 의지가 되고, 불어지상주의(영어로 말하면 무시하는) 현지인과 달리 편하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동료이다.


오늘도 수술이 몇 건 있다 하기에 아침부터 수술실로 출근했다.


수술실은 처음 와서 봤을 때나 오늘이나 충격적이다.

각양각색의 수술복을 입긴 했으나, 무균술은 찾아볼 수 없고 스크럽도 패스하거나 형식적이다.

집도의 하는 의사 외에 모든 스텝이 밖에서 신고 다니는 붉은 흙 가득한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온다.

수술실 바닥은 수술 전 물청소를 하는데, 어차피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오기 때문에 다시 흙탕물이 되고, 흙덩어리가 떨어져 있는 곳도 있다.

수술실 자체가 수술환자에게 취약한 2차 감염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있고, 수술에 대한 위험성도 있어서 매일 다발성 장천공부터 출산, 맹장, 복막염, 기생충제거 등 다양한 수술이 행해지지만, 수술하는 중에 많은 환자가 죽는다. 병으로 죽는 게 나을까 수술하다 죽는 게 나을까?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왕성한 이곳에서는 어찌 죽든지 현지인들은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의료분쟁이 일어날 일이 전혀 없는 곳.


외국인인 내가 수술실에 가서인지 닥터 포캄은 평소 하지 않던 격식을 갖추고 수술을 진행하려는 듯했다. 오늘따라 나를 포함하여 수술을 참관(구경하는 사람도 많음)하는 이들이 수술실을 채웠다.


오늘 첫 수술은 기생충 제거술이었다.

살면서 사람 배 표면 위로 기어 다니는 기생충을 뚜렷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 부모님 세대는 기생충을 보기도 했다지만 난 처음이었다. 복수가 찬 듯 배가 방방하게 불러있는 남자환자의 배꼽 주변에서 윗배로 기어올라가는 저 왕꿈틀이는 거진 20센티가 넘을 것 같다. 녀석을 꺼내는 것이 이 수술의 미션이다. 얼마나 오래 먹고살았길래 저렇게 길고 크고 뚱뚱한 것이냐? 하면서 포캄은 수술 전 긴장을 농담으로 풀었다.


수술하는 동안 마취를 걸고, 환자의 Vital sign(활력징후)와 SaO2(산소포화도)를 모니터 해야 하는데 그 흔하고 간단한 모니터링 기기가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나는 십자가 모양의 낡고 낡은 수술용 침대가 수술실 가운데 놓여있는데, 현지인들 체격에는 올라 눕기도 아슬아슬한 너비의 일자 침대 위에 가로로 나무를 덧대어 만든 모양새다. 그 나무판 위에 환자의 팔을 양 옆으로 벌여 묶어두고 수동식 혈압계 커프를 전박에 감아둔 모습이 환자의 인권이나 존엄성이 침해당하는 것처럼 보여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이 병원엔 마취과 의사도 없고 살짝 재우고 리도카인(국소마취)을 주사하며 수술을 하기 때문에 개복술(배를 여는 수술) 중간에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단단히 묶어두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마루타를 보듯 환자가 안타까웠다.

이런 순간에 '이건 있을 수 없다'는 내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태연하기가 참 힘들다.

 '난 과연 현지에 ,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닥터 포캄에게 모니터기기를 물으니, 독일, 프랑스에서 보내온 수술실 모니터 기기가 창고에 여러 개 있는 데 사용방법을 몰라 사용하지 않는단다.

"닥터 초이, 네가 우리 의사, 간호사들에게 방법을 좀 알려주라."

그래 내가 알려줄게. 얼마든지.


수술이 시작된다는 사인을 하자 작동되지 않는 수술 등 위로 키 큰 수술실 간호사가 손전등을 비추고 섰다. 모두 마스크를 쓰긴 했는데, 코 아래로 내려와 말을 할수록 턱까지 내려오는 사람도 있고 정말 가관이다. 나는 백 마디 잔소리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수술용 마스크 한 장을 쫘악  펼쳐서 젤 윗줄은 내 뒤통수에 야무지게 묶고 아랫줄은 턱 아래를 덮어 뒤통수보다 위쪽으로 묶었다. 그리고 그 위에다 덴탈 마스크 한 장을 더 썼다. 완벽한 수술복과 모자로 머리카락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그 위로 마스크를 쓴 마치 교과서에 나오는 바른 착용 예시 같은 내 모습을 본 닥터 포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정작 그는 수술복 위에 정육점에서 덧입는 커다란 비닐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돌팔이 같은 모습 가득한 닥터 포캄이 임무를 완수할지 의심 가득했다. 나는 스크럽 간호사 반대편에 가까이 붙어 서서 수술부위 그리고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수술 도구들을 보며, 물품지원 프로젝트로 다 바꿔야겠다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수술용 메스(Mes)는 다행히 새것을 꺼냈고 시커먼 메스대에 끼워졌지만 끼우는 부위가 닳아 딱 안 맞는지 흔들다. 닥터 포캄은 익숙하다는 듯 그 흔들리는 부위를 두꺼운 손가락으로 누른 채로 목표한 지점에 칼을 갖다 댔다. 그는 그전에 기생충의 길이와 환자의 복부 표면에서 꿈틀대는 것을 나에게 가리키며

"이것이 아프리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식수부터 기본 위생관리가 매우 열악하니 어쩔 수 없는 현지 사정이다.

경구용 기생충 약을 봄, 가을로 먹이는 보건소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인 듯하다.


나는 닥터 포캄이 환자의 복부에 칼집을 낸 순간 뒤로 쓰러져버렸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 침대 한편에 누워있었는데, 스치듯 생각나는 장면이 수술실 바닥에 쓰러진 나를 흔들어 깨우던 간호사와 깜짝 놀란 구경꾼들 몇몇의 얼굴이 생각났다. 정신이 드냐고 수술실 수간호사가 물었다.

왜 내가 여기 누워있냐고 수술은 끝났냐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깨어났다고 누군가 외쳤고, 아까 수술실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 "Oh, ma sœur, ma fille.") 오~ 내 여동생아, 내 딸아' 하면서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에 손을 얹고

걱정해 주었다. 그때 닥터 포캄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너 왜 바보같이 마스크를 2개나 썼냐?" 며 농담 섞어 호통을 쳤다. 뭐가 더러워서 2개나 썼냐며 "Pourquoi?(왜? 왜? 왜?!)"를 반복하는데 그제야 머쓱한 웃음이 나왔다. 수술은 이미 끝났고, 나는 마스크를 2개 쓴 통에 산소부족으로 순간 기절한 것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현지의 수술실과 수술현장은 기절할 만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더러워서 쓴게 아니라, 그저 수술을 준비하는 우리는 이렇게 스크럽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어쨌든 어리석은 나의 마스크 2장으로 기절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겠지.

벌써부터 들리는 듯 하다 그들의 웃음소리.


이제부턴 백마디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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