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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Aug 15. 2023

구사일생(1)

바멘다 짐 캐리

수도 야운데에는 정부기관에 파견된 컴퓨터분야 단원들이 대부분이고 전국 각지로는 주로 간호단원들이 파견되었다. 카메룬의 북서부 지역 바멘다(Bamenda), 바푸삼(Baffusam), 바함(Baham)에 파견된 우리는 '바남매'라 불렸는데, 바멘다에서 바푸삼까지 약 2시간, 바푸삼에서 바함까지 30~40분 정도로 동부 베르뚜아나 남부 림베 단원들보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 


카메룬은 불어권이 7 지역이고 영어권이 3개 지역 있었는데, 바멘다는 영어권 지역이다. 

International 한 언어는 영어인데, 불어가 우세한 이 나라에서는 영어권 지역에 차별이 꽤 심한 편이다. 바푸삼에서도 영어로 말하면 본채 만채 모르는 척하는 일이 태반이고, (물론 영어를 못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영어권 사람들에 대한 무시가 그 옛날 양반-상놈 대하듯 한다. 

솔직히, 불어권 지역은 내가 살면서 부대껴서 그런지 몰라도 질서도 없고 어디 찾아가려 해도 도로 구획이 거미줄처럼 되어 있어서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무례한 편이고 거칠다. 

내 경험이 전부를 말할 수는 없지만, 여행 다녀본 영어권지역은 도시가 깔끔하고 바둑판 식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사람들도 호인이 많아 영어권사람들은 가난해도 예의가 있다는 선입견이 자리 잡혀 있었다. 


바멘다 선배는 임기 마치고 귀국하면 불어는 아무 쓸데가 없다며 항상 영어공부에 열심이었다. 

남자간호사인 그는 파견병원 수술실에서 근무 중이고, 나이는 우리보다 네댓 살 위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아무도 모른다. 선배는 우리가 처음 카메룬에 왔을 때 산 사람 같은 덥수룩한 머리털을 단발로 기르고 있었고, 피부색은 거의 현지인과 가까운 색으로 검게 그을었으며 입에 발린말은 절대 하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말 걸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낼수록 웃을 때 유난히 하얀 건치와 호탕하고 재치가 있어 때에 맞게 아재개그를 날리는 유머감각을 가진 선배는 외모도 행동도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를 닮았다.  

게다가 정치, 사회, 종교적 가치관이 잘 맞았던 우리 바남매 모두는 기독교인으로 함께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이어서 통하는 것도 많고 교회 오빠, 친구로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다른 남자 선배들을 보면 적극적이면 현지화되어 현지인 친구들과 여가생활에 바쁘거나, 소극적으로는 게을러서 퇴근 후에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한국 드라마, 영화에 빠져있는 한량도 많은데, 이 선배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제일 싫어했고 마른 몸에 실한 근육이 울룩불룩하니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 임상시험통계 쪽으로 벌써 귀국 후 진로를 세워놓은 진취적이고 계획이 뚜렷한 선배였다. 그런 선배는 현지에 와서 거의 10kg씩 불어버린 나와 바함 단원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이어트하라고 운동법을 알려주고 닦달을 했다. 웬 오지랖인가 하면서도 선배가 있을 땐 더 적게 먹고 운동도 하는 척을 해야 했다.  좋은 점도 있었는데, 3교대 병원 임상만 경험했던 무지한 우리에게 '임상시험'(Clinical trial)이 블루오션이라며 이쪽 일이 전망이 있다며 부지런히 소개해 준 선구자이기도 하다. 


바함은 갈 때마다 한국에서 신발장에만 고이 모셔뒀던 장화가 그립다. 

온통 진흙바닥인 그곳은 애초에 나이*라던가, 좋은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좀 걸었다가는 맨발에 슬리퍼만 못하게 진흙범벅이 되고 만다. 운동화 바닥에 붙기 시작한 진흙덩이가 불어날 때마다 굽이 높아지고 떨쳐내려 해도, 아스팔트는 커녕 시멘트 신작로도 없기에 높아진 굽을 집에 도착해서나 벽돌에 벅벅 긁어 떨어내야 한다. 바함동기는 키가 좀 아담했는데, 한국에서 사가지고 왔다는 20cm 통굽 슬리퍼가 이렇게 유용할지 몰랐다며 신고 다니는 것이 처음엔 기괴해 보였는데, 바함에 와 보니 맞춤형 생존 신발이라는 그의 말이 맞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하나도 없다. 


바함단원은 나와 동기면서 동갑내기인지라, 우리는 '바자매'라고도 불린다. 웃을 때 눈이 배우 '송선미'를 닮은 이 친구는 통통한 편인데, 성격도 둥글둥글하고 소아과 간호사 출신이라 상냥한 말투가 참 이쁘다. 내가 편하고 웃겨서 좋다며 내 임지 근처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는 이 친구와 나는 쿵짝이 잘 맞아서 모두가 무서워하고 대하기 어려워하는 행정원 대행 박사님도 웃게 만드는 환상의 콤비다. 게다가 요리를 정말 잘하는 이 친구가 그 척박한 바함에서 동네사람들에게 구한 식재료로 한식요리를 해줄 땐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또한, 모든 음식에 카레가루(강황가루)를 넣는 것 때문에 우리의 면역이 튼튼해지고 있다고 강력히 믿고 있다. 물론 다이어트를 향한 우리의 일편단심이기도 하다.  


개성 강한 우리들은 바지역 투어로 1년에 한두 번은 서로의 임지를 가끔 오가며 현지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지하며 잘 살고 있다.




바멘다 선배가 고열에 복통과 설사와 구토가 심해서 일어나질 못하겠다고 우리를 불렀다. 

장난스럽고 당찬 목소리라 그리 걱정은 안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멀리 있는 우리한테 쉬이 이런 연락할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SOS 할 때는 정말 정말 아픈 것이 분명했다.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우리는 주사와 수액을 넉넉히 챙기고 이런저런 장을 봐서 병문안 차 선배 집엘 갔다. 


선배는 늘 '환장한다'는 말을 붙이는 습관이 있는데, 

"아후, 뭘 이리 바리바리 싸왔어. 환장한다."

그 말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선배는 얼굴이 벌겋고 그 새 부쩍 수척해졌다. 

서둘러 vital check을 해보니, 열이 거의 40도다. 

나는 얼른 선배의 혈관을 찾아 수액을 연결해 60 gtt로 시작했고, 바함동기는 죽을 끓였다.

그 와중에도, '아후, 바자매. 내가 환장한다'며 중얼중얼거렸다.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제정신이 아니던지, 아니면 면목없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해열제와 수액이 좀 들어가서 그런지 열이 조금 내려갔다. 그래도 뚝 떨어지지가 않으니 걱정이다.

워낙 시커멓게 탄 피부 때문에 황달을 예민하게 알아채지 못한 우리는 감기몸살인가 말라리아인가 걱정하면서 주말을 잘 지나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선배는 죽을 다 먹지 못하고 구토와 설사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어지럽다고 호소했다. 

심상치가 않다......

현지 응급실 현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해열제와 수액 투약을 하고, 수도 사무소에 연락해서 상태를 알리는 것이었다. 


주말이 지나 선배는 수도 야운데로 올라갔고, 간수치가 4000으로 정상수치(45)의 거의 백 배가 올랐다고 했다. 그 어디서도 저런 수치는 본 적이 없다. 

원인은 <A형 간염>이란다. 일명 후진국/개도국 병이라고 알려진 A형 간염은 기본위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감염되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다. 


정말 '환장한다. 선배'


다이어트는 바자매가 해야 하는데, 선배는 인간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나 싶을 만큼 앙상하게 마른 채로 국제 SOS를 통해 한국 후송되었다. 선배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중에 선배와 연락이 닿았을 땐 한국으로 실려갔으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남매답게 물도 안 끓여마시고 바깥음식도 무턱대로 사 먹었을 거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선배는 타국에서 혼자 아프면 서러운데,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 연락을 받고 바로 우리가 와 줬기 때문에 자기가 살았다며 생명의 은인들이라고 고맙다는 멋쩍은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걱정 말고 잘 쉬고 잘 먹고 돌아오라!!!! 바자매가 기다린다 환장선배!!!


파견 1년이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풍토병이 누적되어 그런가 하나둘씩 아프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현지에 도움이 되고자 열악하고 힘든 이 환경을 나름대로 극복하며 살고 있다. 세상이 골고루 잘 살고 건강하게 나아지길 바라는 소망에 가치를 두고 봉사를 나온 사람들이기에 힘든 현실을 원망하기보다는 서로가 더 건강하게 맡은 임기를 잘 마치자 격려하는 중이지만, 누구라도 본국에 후송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국이었으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을 일.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지. 

우리의 인생은 이런 경험 때문에 훨씬 넓고 깊고 풍성하고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며 잔잔하게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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