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루니안
아프리카에서 살 준비
파견희망 국가 1, 2 지망 모두 '아무 곳이나 상관없음'.
설마 아프리카가 옵션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곳에 대해서는 지구탐험대나 동물의 왕국만 떠오를 정도로 무지했기에 두려웠지만 대부분 가기를 어려워하는 곳에 내가 간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국가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 이 사실에 몇몇 찐친들은 다시 못 돌아올 사람 보내듯이 울며불며 나를 보냈다.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 기후는 어떤지? 인터넷 상황은 어떤지? 풍토병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꼭 필요한 아이템은 무엇인지 얼굴도 모르는 선배기수에게 메일로 문의하여 정보를 얻었다. 모기장과 모기향이 필수였고, 피부에 알을 까는 기생충이 있으니 모든 옷은 뜨겁게 다려 입어야 한다며 반드시 다리미를 챙겨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벌레는 다 싫은데, 피부에 알을 깐다고? 나 잘 살 수 있을까?
2년간 살아야 하니 화장품이며 비상약도 단단히 챙겨야 했다. 짐을 챙기고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고 코이카 훈련을 받고 나니, 뭔가 모를 비장함으로 무장된 듯하다.
출국준비하며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면서 신중 또 신중했다. 정말 필요한 것을 잘 포장해서 넉넉히 가져가려고 애썼다. 커다란 이민 가방 2개씩을 가져갈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팬트리가 통째로 실려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춧가루, 고추장(대한항공에서 해외봉사 간다고 엄청 많이 싸주셨단 점을 살짝 강조!!), 김, 라면, 카레가루, 짜장가루 등등 먹고살겠다고 J라면 수프만 따로 모으고, 내가 좋아하는 왕지렁이 젤리도 짐 사이사이 완충제 겸 간식으로 꼼꼼히 챙겨 넣었다. 빈틈없이 꽉 채운 가방을 보니 뿌듯하다.
출국 배웅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신 엄마랑 자취방에 나란히 누워 자려는데 엄마가 계속 내 손을 만지작만지작하신다. 윽! 울면 안 돼. 약해지지 말자.
"엄마, 2년 잘 살다 올게. 나 하나님 딸이잖아! 걱정하지 마요!!"
음식이 맞으면 일단 오케이
나는 세상 어딜 가도 적응은 기똥차게 할 것이다. 사람도 자연도 환경도 음식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수도 야운데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유럽 같은 분위기에 기대보다 세련되고 현대화된 도시다. 워낙 한식 입맛인지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럴 수가 아프리카 음식 너무 맛있잖아.'
동기 단원들과 한국음식 위주로 먹었던 현지 적응 훈련 기간 3개월이 지나고 각자 발령지로 떠나서는 이제 혼사 살면서 해 먹어야 한다. 내 발령지 바푸삼에 와서 한 두 달 사이 7kg가 쪘다. 주범은 바로 '쁠랑뗑'이었는데, 바나나과의 채소로 구워 먹고 기름에 튀겨먹고 어떻게 먹어도 너무 맛있다. 특히, 기름에 튀겨낸 쁠랑뗑을 매끼 한 접시씩 해치웠는데, 그래서 7kg 에서 지분을 상당히 가졌을 것이라고 본다. 달달한 것이 고구마튀김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은돌레(Ndolé)'에 다라쉬(땅콩) 소스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맛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맛인데 은돌레 잎 특유의 향이 묘하게 곤드레나물밥 같기도 하다. 굳이 비슷하게 찾자면 말이다. 그리고 채소, 과일이 풍성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입맛에 맞는 현지음식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래도 가끔 엄마 생각이 나고 고향 생각이 나면, 어떻게든 살겠다고 시장에서 양배추를 사다가 김치도 담가먹고 익으면 김치볶음밥도 볶아먹는다. 아, 여기서 먹는 쌀은 태국쌀인데 얇고 길쭉한 안남미라고 하던가? 물을 아무리 많이 넣고 밥을 해도 흩어지는 그 밥.
수박 한 통을 다 먹고 버리려는데, 초록과 빨간 사이 하얀 무처럼 생긴 부분이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네모 얇게 썰어 모았다. 양이 꽤 되는 수박 흰 속살을 양푼에 모르고 굵은소금을 촵촵촵 뿌려 재어둔다. 시간이 지나 약간 부드러워져 있을 때 물로 헹궈 소금기를 씻어내고 꽈악 짜 준다. 물기를 털어낸 수박 흰 속살에 고춧가루를 휘휘 뿌려 버무리면, 와우!!!!!!!!!! 무김치 맛도 나고 오이 맛도 나는 수박 김치 완성이다.
상큼한 수박김치를 먹고 있으니, 쫄면 생각이 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스파게티 삶아서 고추장에 비벼볼까?
다 익힌 스파게티에 고추장을 넣어 아무리 비벼도 맛이 스며들지 않고 따로 논다. 그래도 고추장 맛이 모든 것에 감사하게 한다. 한국 냄새나는 모든 것이 맛있으니까 그렇게 그리움을 달래 본다.
고추장, 고춧가루를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최대한 현지 재료로 한식을 만들기로 했다.
마뇩 떡볶이, 수박 김치, 셀러리 야채죽, 콩껍질(아리코베) 야채볶음밥, 스파게티 라면, 못난이 김밥 등
고급 시리얼
바푸삼에 나름 큰 마트가 하나 있다. 거기에 가면 유럽산 시리얼이 나열되어 있는데, 겉포장 박스가 햇빛에 바래서 오래되어 보이는 제품들이지만 설마 그런 상태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늘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들었다 놨다 하며 언젠가 우유를 가득 부어 많이 먹고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생활비 모아서 꼭 사 먹어야지.'
카메룬의 공산품은 수입품이 많아서 가격이 꽤 비싼 편이다. 물론 현지인들 기준이지만, 나 같은 봉사단원에게도 비싸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눈여겨 둔 시리얼을 사 왔다. 기대와 떨림 속에 박스를 뜯어냈다. 속에 비닐봉지를 꺼내 들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작은 벌레들이 붙어있는 것 같고 기어가는 것도 같고, 박스 안을 들여다보는데 우악!! 새끼손톱만 한 새끼바퀴벌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럴 수가,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빠져나오는 그 조그만 바퀴들을 죽이며 애통했던 그 순간은 지금 떠올려봐도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시리얼을 먹어야 했다. 비닐봉지를 열어 시리얼을 볼에 가득 담았다. 박스에서 바퀴벌레가 떼 지어 나왔다는 것은 잊은 채 먹을 생각에 우유를 양껏 부었다. 한 입 먹으려는데, '어 이상하다 우유 위에 뭐가 떠있는 거지?' 자세히 정말 자세히 들여다봤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벌레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악, 애벌레... 둥글고 크림색의 원통 몸에 가로줄이 보이고, 이게 시리얼에 들어간 그 어떤 재료나 성분 같지 않아 보인다. 거금을 들여 샀는데 이럴 수는 없다. 커다란 채를 가져다 놓고 비닐봉지에 있는 시리얼을 부어 걸렀다. 탁탁탁 쳐낼 때 가루를 내보내고 그 안에 말라버린 애벌레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큼직한 조각들 위주로 후후~불어 다시 지퍼팩에 모았다. 카메룬에 오자마자 물갈이 설사를 호되게 했으니, 이 정도는 먹어도 면역이 이겨주겠지 하며 열심히 채에 걸렀고, 의심스러운 모양의 것들은 과감히 버렸다.
모든 곳에 벌레가 있구나.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질거린다.
상식과 기준을 버리고 언제 어디서 놀랄지 모르는 이 재미난 이방인의 삶을 즐겨보자!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