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루니안
가려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파견지 <바푸삼, Bafussam>에 왔지만, 코이카 기준에 준하는 안전한 집을 아직 구하지 못해 현지인 집에 2주간 민박을 했다. 2주 치 방세를 한 번에 내고 머물러서 그런지 깔끔한 리넨으로 세팅된 그 집에서 가장 좋은 침대방을 내주셨다. 집은 전체적으로 볕이 안 들어 어두컴컴했는데, 그래도 내 방엔 창이 하나 나 있었다.
'야호~아프리카에서 나만의 공간이라니!!'
주인 내외분은 이곳 한국 선교사님 교회를 섬기시는 전도사님 부부였는데, 정말 친절하셨다. 너무 많은 돈을 줬다며, 매 끼니 식사를 정성껏 만들어 주셨는데, 아무래도 나를 살 찌운 '쁠랑뗑'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여기는 정전이 잦기도 하고 전기 공급이 부족해서 아직 호롱불을 쓰는데, 나름 낭만적이다.
밤도 대낮처럼 밝아 빛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냈던 한국의 풍요로운 삶에 새삼 감사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없는데도 흔들리는 호롱불을 보고 있자니, 인지하지 못하는 공기의 흐름처럼 깨닫지 못했던 무수한 혜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을 반성하게 된다.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하며 주황불빛 아래서 다이어리를 쓴다. 본부에서 지시한 임무를 해야 하지만, 퇴근 이후의 시간과 주말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지 기대를 가득 안고서 몇 자 적다 보면 감성에 젖어든다.
인터넷과 휴대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이 사색을 시작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언제나 반전은 있다. 이 감사의 날이 오래가진 못했다.
며칠 지나 왜 이리 가렵나 했더니, 바로 벼룩! '벼룩'때문이다.
평화로운 오후, 햇살이 비추는 침대에 앉아서 벼룩의 점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생각보다 높이 튀어 올랐고,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한 마리가 아니었으며, 끝도 없는 박수를 쳐봤지만 가려운 부위는 날로 세력을 넓혀갔다. 매일 밤, 내 침대를 점령한 벼룩에게 제물이 된 것 같은 걸쩍지근한 기분으로 누웠다. 가려워도 긁지 않으리 다짐하며...
룸메이트
지금은 바푸삼 빌라(내가 지은 빌딩명) 4층 A호에 거주 중이다.
민박집과 비교가 안되게 집이 환하고 벽과 바닥 타일이 깨끗해서 벌레가 살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봉사단원으로서 편하고 좋은 곳을 찾는 건 현지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종종 외국인(특히, 중국인) 살해 사건이 나는 이곳의 치안을 고려해 구하다 보니 기대한 것보다는 좋은 곳에서 살게 되었다. 소개받은 현지인 목수에게 직접 제작을 의뢰해서 침대와 조그마한 책상 그리고 식탁도 하나씩 구했다. 옷을 넣어둘 작은 3단 서랍장도 침대 옆에 두었다. 커다란 창을 뚫을 것처럼 작렬하는 적도의 태양빛이 부담스럽지만, 봉사단원 용돈으로 많은 것을 갖추고 사는 건 사치다. 그래서 커튼 없이 살기로 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거야.'
어느 날이었다. 책상에 앉아 랩탑을 켜고 이런저런 사진 정리와 보고서도 쓰고 일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젖혀 천장을 보게 되었는데, 책상 모서리 위 천장에 내 검지 손가락만 한 무언가가 있다. 벽에 칠한 페인트랑 비슷한 아이보리색 같기도 하고 옅은 카키색을 띤 것 같기도 하다. 잠들려고 할 때 가끔 들리는 '사각, 스스슥' 소리는 그냥 밖에서 나는 소음일 거라 믿었는데, 그 소리의 정체를 찾은 것 같다.
의자 위에 올라 가까이, 더 가까이 가 본다.
속이 다 보이는듯한 투명한 피부, 까맣게 튀어나온 두 눈, 너무 작아서 귀여워 보이는 앞다리와 뒷다리 그리고 아담하지만 결정적인 도마뱀 꼬리...
"끼야아~~~~~~~~~~~~~~~~~~~~ 도마뱀이닷!!!!!!"
도마뱀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지른 괴성에 귀가 멀었을 수도 있다. 원래 목청이 큰데,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라 도망가주기를 바랐는데 모서리 끝을 향해 휘리릭 좀 더 올라갔을 뿐 도망가지 않는다. 창문을 열면 모기가 들어올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방 구조상 내가 가져온 모기장을 걸어둘 곳이 없어서 모기장 없이 지내고 있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내보낼 수도 없었다. 두꺼운 책으로 때려죽이자니, 볼륨 있고 물컹한 그 몸을 눌러 죽이기가 미안하고 또 한 번에 죽일 수 없을 거 같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죽이지도 못해. 죽여본 적도 없어. 그러니 어서 도망가. 도망가라고~~~~!!!"
오늘 잠은 다 잤다. 씻고 나와보니 없다. 도마, 어디 갔니? 아까보다 더 무서워.
자는 동안 나한테 오면 어떡하지? 내 몸을 기어 다니면 어쩌지? 내가 입 벌리고 자다 깨물어 먹으면 어떡하지? 일어나지도 않을 온갖 일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온몸을 이불로 꽁꽁 싸맨 후 미라가 되어 잠들었다.
다음날 선배가 그랬다. 그런 도마뱀은 모기를 잡아먹어서 우리한테 유익하다고 그냥 같이 살라고. 자기네 집엔 팔뚝만 한 '오색찬란이'가 잡히지도 않고 여태껏 산다고(선배는 벌써 1년을 살았다). 검지손가락 정도라면 자기는 데려다 키우겠다며.
나 혼자 외로울까 봐 하나님이 친구를 보내주신 건가? 모기장을 못쓰는 나를 위해 <말라리아모기> 다 먹어치우라고 보내신 사신인가? 다양한 사이즈로 거칠게 찾아오는 바퀴들에게도 아직 마음을 못 열었는데, 새로운 친구가 또 온 것이다.
그래, 같이 살아보자. 나한테는 오지마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