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챔피언-싸이
2002년 우리의 심장을 촐싹거리게 했던 그 가수는 노래했다.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 하! 모두의 축제! 서로 편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
A팀 상무님은 남편분과 그다지 사이가 안 좋아 보였는데, 남편분과 대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좋게 평가하셨다. 경제적 형편도 꽤 좋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신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개인사를 오픈하는 상대는 점점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 더군다나 회사 상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직속 상사는 아니고 다른 부서니까 그리고 같은 사내 동호회 그룹이라서 부담은 덜 하지만 말이다.
그분의 차를 얻어 타고 학교 음악회를 가게 됐다.
꼭 가고 싶었던 공연이긴 했지만, 그분이 먼저 가느냐고 제안을 하셨을 땐 몇 년을 기다린 이 공연을 포기해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었다. 어쩌다 학교가 오픈된 바람에 친밀감의 표현으로 제안하셨을 것을 알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이 가자고 해 버렸다.
혼자 마음 편히 즐기고 싶었는데..... 이런 때 보면 공과 사를 똑 부러지게 구분하며 상사의 제안이라도 딱 잘라 거절하는 요즘 세대들이 부럽다.
난 공익을 대변할 때와 달리 이렇게 접근하는 개인적인 제안에는 쉽게 거절을 못한다.
상무님은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에 살았고, 재택으로 일하고 있는 나를 배려해서 픽업하러 오겠다 하셨다. 그것도 이런저런 핑계로 극구 거절했지만, 결국은 그분의 뜻대로 우리 집 근처까지 오시게 됐다.
(왜 으른들은 이렇게 우기는지 모르겠다. 거절하면 거절도 존중해 주면 좋겠는데....)
집 근처 아파트 앞에서 약속한 시간에 상무님의 차를 탔다. 타자마자
"어머 여기 사는구나~~~! 내가 잘 알지. 여기 I PARK에 내가 살았잖아. 동네가 이 아파트 말고는 다 빌라여서 애들이 물이 안 좋잖아. 왜 여기 살아? 좀만 더 나가면 학군도 좋고 아파트도 많을 텐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아, 네네" 했다.
아파트는 여기 말고도 자이도 있고, 롯데성전도 있고 주변에 많다.
그리고 빌라여서 애들이 물이 안 좋다는 논리는 무슨 말인가?
내가 빌라에 사는데? 우리 아이들도 어디선가는 빌라에 사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평가되는 것인가?
" 근데 왜 이사 가셨어요? "
" 아니, 우리 딸이 몇몇 친구 잘못 만나서 중학교 때 고생을 했잖아. 빌라에 사는 사람들 수준이라는 게 대부분 부모가 맞벌이하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교대하는 직종이 많아서 애들이 방치되잖아. 이 동네 놀이터에 밤마다 시끌시끌한 청소년 문제가 많았거든. 지금도 그렇겠지. 다문화 가정도 많고.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그때 결단을 하고 무리해서 학군 좋은 데로 이사 간 거야. 첫째도 곧 중학교 가지 않나? 빨리 이사 알아봐. 여기 I PARK에 살아도 애들이 아직 어리면 잘 모를 수도 있어. 내가 무슨 이야기하는지. 빌라사는 애들 조심해야 돼. 아니 애들 초등학교 졸업 전에 이사해요."
너무 얼떨결에 나는 아이파크에 사는 사람이 되었고, 아무 말 없이 그분의 말에 동의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뭔가 문제 있는 사람처럼 일반화하는 그분의 말은 몹시 불편했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이나 맞벌이, 교대 근무 직군에 대해 귀천을 나누며 품은 지독한 선입견.
그 기준 하나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고 편을 가르는 말에 불쾌함이 치밀었다. 화제를 바꿔보려 했지만, 오랜만에 옛 동네에 와서 들떠 있던 상무님은 흥분한 채 딸이 겪은 일이며 빌라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고, 나는 그 말의 흐름을 끊기가 어려웠다.
그분은 계속 나 역시 같은 생각일 거라 전제하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신기하게도 나는 불쾌한 기분과 달리 중간중간 웃기도 하며 반응했다. 나도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며 스스로 가증스러웠다.
상대의 말에 호의적인 반응과 전혀 다른 속내.
근데 무슨 근거로 아파트에 살면 인간 됨됨이가 보장되는 것인가?
우리는 서울소재 나름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 현재 둘 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우리 인생은 우리가 직접 책임지자는 소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각자 경력이 너덜 해져도 부모님께 육아를 맡긴 적이 없다. 우리 부부가 알아서 키워왔다.
물론 그래서 좀 가난하긴 하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지 이직이나 복직이 가능했고, 은행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파트 생활도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서울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시골 같은 고요함이 느껴지는 이 주택가 구석의 조용한 빌라를 선택한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축복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 사정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이 빌라에서 어느덧 12년째 살고 있으며, 좋은 이웃들과 맑은 공기가 있는 이 정겨운 공간이 참 고맙고 소중하다. 우리는 돈이 없는데 가랑이 찢어지게 돈을 빌려서 아파트를 사거나 굳이 여기보다 비싼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생활을 하는 것이지 그것으로 사람의 수준과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은 정말 기분 나.쁘.다.
우리 아이들은 학년을 마칠 때마다 성품에 대한 꾸준한 칭찬을 학교로부터 표창받고 있으며, 학교 성적도 꽤 좋은 편이다. 부모가 원해서 집을 소유하지 않았을 뿐, 맞벌이는 하고 있고 교대근무가 없을 뿐, 가끔 아이들을 놀이터에 방치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풀어놓기도 한다.
다문화 가정이나 경제사정이 열악한 가정의 아이들, 아니 빌라에 사는 그 누구라도 아무 죄 없이 이런 시선에서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화가 난다.
상무님의 빌라와 아이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중간중간 그렇죠? 하며 동의를 구하는 포인트가 계속되었다. 어느 지점에서 '빌라살이' coming out을 해야 할지 엿보고 있었고, 그분이 받을 충격과 민망함이 고민되어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브람스 교향곡 제4번 1악장 · J. Brahms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102 · 브람스 이중 협주곡.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으로는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다. 곡 전체에는 개인적인 감정, 대화하듯 이어지는 두 악기의 조화, 그리고 교향곡적인 풍성함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합주를 하듯 편가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 그리고 수준이 함께 어우러지면 얼마나 좋을까?
대한민국 내에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정과 문화도 존중하며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분 옆에서 가시방석 같은 음악회를 다녀왔다.
40대의 나는 빌라에 살고 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