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마흔둘

동병상련

by 아궁이

남자다운 체격에 선이 또렷한 미남형 남편, 그와 어울리는 아내 역시 너무 아름답고 우아하다.

두 사람의 행복했던 그 시절과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표정의 결혼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남편은 배우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이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육아와 살림을 도맡는 전업주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육아에 지쳐버린 그는, 아이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이면 어김없이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새벽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아내는 쇼호스트.

그녀는 남편을 대신하여 경제활동을 도맡고 있다.

당분간일 거라 생각한 아내는 밤낮없이 일하고 있지만 집안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고 끝이 없는 가난으로 우울감이 깊어지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무능함과 일상이 된 무력감이 답답하고 한심하지만, 살아야 하기에 본인이 아끼던 비싼 명품을 하나 둘 팔아 생활비에 보탰다고 했다. 그게 어느덧 첫째 아이 돌반지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말하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나름대로 배우로서 어떤 역할이든 따지지 않고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그마저도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한 좌절과 스트레스로 매일 술을 마시니 아내와 소통이 될 리 없다.

부부사이의 깊어가는 갈등으로 잦은 싸움이 반복되고 서로 이혼을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라 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춰서 보게 돼서 어떤 프로인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참을 보며, 나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아내의 인터뷰 내용은 인생에서 실미도에 갇힌 것 같던 그때의 내 독백과 똑같았다.

상황만 다를 뿐... 삶이 혹독했던 그때 나도 마흔둘이었다.


둘째를 낳고 복직을 앞두고 있던 그때, 아이를 봐주마 하셨던 시어머니는 날이 다가올수록 악몽을 꾼다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자기 어머니 걱정에 본인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해보겠다 했고, 아빠 육아와 관련한 책을 써보고 싶다는 계획을 내세워 나를 설득했다.

프리랜서였던 그에게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기에,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돌봄으로써 베이비 시터 비용을 절약한 셈이고, 또 계획한 대로 책을 쓰게 된다면 결국 그것도 수입이 될 테니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말에 나도 기대하며 동의했다.


고정 수입을 보장하는 정규직인 내가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남이 아닌 남편이 육아를 하니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부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복직 후 회사 일은 끝이 없었고, 야근도 잦았다.

그런 날은 지친 몸을 끌고 퇴근하면 "수고했어"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날마저 도 "아~ 힘들다"라고 하면 그는 "나도 힘들어"라고 했으니 우리의 공감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이들과 웃으며 한가로워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점점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가 둘이 되면서 맞벌이로 살림을 확장하자는 의지가 서로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은 결국 말을 번복한 어머니에게로 향했고 많이 미워했다. 그 생각들은 우리의 가정을 잘 꾸려갈 나의 의지를 꺾어 놓고는 했다.

미움에서 비롯된 나쁜 생각들은 가시덤불처럼 내 영혼을 덮고는 갉아먹었다.

행복하게 해 준다 할 때는 언제고 쉬운 것만 하면서 편하게 살려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내 마음은 병들기 시작했다.


병든 마음은 나만큼 그도 집에서 아이들과 힘들었을 것을 헤아리지 못했기에,

그 시절 내가 느끼는 나는 짐을 가득 지고 오르막을 오르는 당나귀 같았고

그는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터팬 같았다.


문제는 4인 가족 홀벌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전혀 한 팀 같지 않았다.

그 시절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뭐 하는 사람인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였다. 결혼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 정서적 고립감과 거리감이 점점 깊어졌다.


끝이 없는 터널을 걷고 또 걷는 것 같았다.


철저한 내 관점이었지만, 내가 볼 때 그는 늘 자기 취미에만 몰두했고, 반복되는 나태함과 게으름 속에서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면서 온갖 핑계만 늘어놓았다.

자기가 내세운 계획도 지키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애초에 이런 사람인 것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너무 쉽게 결혼을 선택한 것 아닌가 하며 자책하고, 삶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느껴졌다.


'이혼이 아니면 죽음'


고성이 오가는 부부싸움과 감정의 악순환 속에 서로 투명인간 대하듯 했고 그 시간은 꽤 길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은 표정을 잃어갔다. (지금도 그 시절 아이들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난다.)

업무 스트레스와 남편 스트레스 모두가 심해지면서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진단받기에 이르렀다.

매일 죽음을 생각했기에 중증으로 진단되어 약을 많이 먹어야 했다.


실제로 나는 밤 12시까지 퇴근길 테헤란로를 방황했으며,

모두가 잠들었을 자정 무렵엔 마포대교, 양화대교 중간쯤 서서 시커먼 한강물을 바라보곤 했다.

우울증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했던 시절의 나를 후회했다.

'죽을힘으로 살지 왜 죽어?'

그땐 그렇게 쉽게 말했지만, 실제로 죽음이 더 쉬워 보이는 순간이 내게도 온 것이다.


시커먼 강물은 마치 엄마 품처럼 포근해 보였고, 그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지금의 고통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정말,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신기했던 그날 밤, 모두가 잠든 그 깊은 시간.

아무도 없는 그 어둠 속에서, 시커먼 강물은 커다란 소리로 "오라, 오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여, 네가 생을 이렇게 버려도 하늘은 너를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 순간,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고요하면서도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 미세한 한 마디에 나는 귀를 기울였고, 결국 난간에서 내려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무 감정 없는 사람처럼 지나온 몇 개월동안 눈물 흘린 적 없는 내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

소리 없이 죽어가던 내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다 지나간 일들인데,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마흔둘, 그 해 어느 날이었다.


인생에서 고난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꽤 많은 양을 그 시기에 지나왔을 것이다.

40대 시작부터 절반이 넘은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각자 깎이고 꺾이는 시간을 보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시절도 결국 지나고, 이렇게 살아 다시 돌아보니,

이제는 그 시간을 추억하며 느긋해진 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알게 된 게 있다.

출산과 함께 몸과 환경이 변하고,

살아가며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했던 시간이었다는 것.

아픔의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가슴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연민이 언제나 나쁜 감정은 아니지만,

그 늪에 빠져 있을 땐 상대를 전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것을

그도 나름 애를 쓰고 살았고 나처럼 눈물의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TV프로그램에 나온 쇼호스트 아내와 배우 남편도 힘든 시기를 무사히 지나

느긋해지고 끈끈한 부부로 남은 삶을 더 행복하게 살기를 응원한다.


누구나 세상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던 시절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은 더 빛나던, 꾸미지 않아도 서로가 반짝이던 시절 말이다.

아름답던 시절의 우리가 변한 것은 아니다.


다 지나간다.

그러니 헤어지지 말고 죽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자.


나만 불행한 줄 알았던 마흔둘,

고통 속에 있는가?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행복한 계절이 곧 올 것이다.

나처럼.

우리처럼.



feat. 그림. 누룽지 <벼랑 끝에 매달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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