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세상

by 아궁이

한 차례 기내식을 먹고 한국시간으로 밤 시간이 되니 조명이 어두워진다.

대부분 승객들이 잠들었고 나도 보던 영화를 끄고 잠을 청했다.


20, 30대 때는 눈만 감아도 참 잘 잤는데, 빨리 잠들지 못하는 몸뚱이는 어떻게 해도 불편하고 허리가 아파서 이리저리 뒤척이기를 한참 하였다. 답답함을 달래려 다리를 복도 쪽으로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커다란 체구의 외국인은 헤드셋을 끼고 내가 보던 그 영화를 보며 가끔 미소를 지었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석도 그의 몸을 삼킨 듯, 그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내 앞줄에는 엄마와 아들딸 셋이 나란히 앉아있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우연히 보았는데, 모두 잠든 시간에도 가운데 자리에 앉은 딸은 자리 위 조명을 켜두고 수학을 푼다. 한눈에 봐도 고등수학문제들이다. 양쪽 볼에 여드름이 가득한 아이는 한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풀어내고 있다. 그 옆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게임 삼매경이고 엄마는 예능프로를 보며 웃고 있다.


그 모습이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뭐 스스로 좋아서 그럴 수도 있을 테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뜨거운 교육열에 비해 대한민국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남편이 예전에 들려주던 대치동, 목동 학원가의 이야기들이 함께 겹쳐졌다.
자정까지 학원을 전전하다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는 아이들,
학원을 마치면 아빠와 함께 24시간 독서실에 들어가는 아이들,
새벽 4시까지 숙제를 하다가야 겨우 잠드는 아이들…….

만나면 서로 자기 엄마를 욕하는 아이들.

엄마라 부르지 않고 비속어나 은어로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

편의점에서 겨우 삼각김밥이나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때우고 자정이 되기까지 각 과목 학원을 옮겨 다니는 아이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 알까?
알고 싶기는 할까?


그들의 부모세대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공부만 하며 살지 않았지만 실력이 없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이들의 시간과 행복을 이렇게까지 빼앗으려 하는 걸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시간을....


잠시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한 거 같은데, 한참을 잤나 보다. 객실은 다시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스튜어드가 메뉴를 물으며 앞 좌석부터 식사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순간, 정신을 차렸다. ‘앗, 밥 먹는 시간이다.’
기내식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니까.


이번 옵션은 치킨, 에그, 라이스.
어제저녁은 치킨을 먹었으니 이번엔 에그를 골랐다.
옆자리 승객들도 모두 같은 선택을 했다.
그리고는 이유식 판만 한 작은 식판을 받아 들고 각자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기새처럼 내 차례를 기다리다 일제히 밥을 먹는 그 순간 문득 재밌는 생각을 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돈이 많든, 학벌이 좋든, 지위와 명예가 있든 결국 비행기 안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창가든, 복도든, 중간 자리에 끼든, 같은 크기의 의자에 앉아
세 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 정도의 차이일 뿐.


먹고, 자고, 즐기다가, 또 먹으며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비행기에 올라 같은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 순간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칸칸이 드러낸 설정.
가시적으로 보여주니 더 강렬했던 메시지.
감독도 아마 이런 순간의 상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계급 사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선을 긋는 사람들, 이런 씁쓸한 현실을.


누구나 자녀를 사랑한다.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 바람은 너무 간절한 나머지 현재의 기쁨과 행복, 감사와 사랑을 그리고 추억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희생시키고 있다.


나는 청소년들이 어쩌다 시험을 망치더라도,
읽고 싶은 소설을 끝까지 읽기도 하고(원래 시험기간에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는 법이니까)

그래서 다음 시험부터는 열심히 준비하겠다 스스로 각성도 하고
매점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으며 하굣길에 친구들과 깔깔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등짝을 맞더라도 다양한 꿈을 꾸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우리 세대도 시험에 쩔은 학생들은 위로의 대상이었다. 모든 어른들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밤 12시에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우리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래도 우리는 별밤에 사연도 보내고 다른 학교 축제도 찾아다니며 낭만을 즐겼다.


결국 행복은 성적표가 아니라, 그 시간들을 통과하며 얻어지는 것이니까.


도착 즈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구름 이불 가득했던 하늘에서 어느덧 산봉우리들이 보이고 그 아래 꼬불꼬불 물이 흘러내려간 흔적이 보인다.

더 아래엔 작은 집들이 보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고 작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사는 현실이 커다란 자연과 세상 앞에서 덧없게 느껴진다.


-2024. 5월 학회 출장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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