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10살이 사는 법

by 아궁이

모두가 제 할 일에 몰두한 그 틈을 노려야 한다.

아빠는 노트북으로 농구를 보고 있고

엄마도 TV를 보다 잠드셨다.

언니는 빌려온 만화책 삼매경.


이런 시간에 가족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있어 불러도 대답 없다.

그들 중 누구라도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뭐가 이리 허전하지?" 하는 순간 발각될 위험 100프로다.


지금이다! 식탁 위에 놓인 아빠 것부터 접근 성공.

늘 그렇듯, TV 소리와 농구 중계의 소란스러운 와중에

내 특유 왁자지껄 소음을 피처링하며 슬쩍 아빠 폰을 손에 넣었다.


좋아, 눈치채지 못하게 나중에 필요한 게임 앱을 깔아 놓아야 한다.

아빠는 내가 가져가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성공!


다음은 엄마 폰이다.

주도면밀한 엄마는 제일 조심해야 할 인물이다.

엄마는 우연인지 몰라도 내가 엄마 폰을 가져다 게임을 할 때마다 자꾸 불러서 한참을 안아준다.

좋긴 한데 엄마는 왠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엄마도 본인 폰에 내가 게임을 깔아 두었는지 뭘 해놨는지까지는 확인하지 않는 것 같다.

손에 넣기만 하면 된다.


틈틈이 게임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위한 나만의 공간도 필요하다.

다행히도 아빠는 아직까지 K톡에 멀티프로필 기능을 모른다.

친구들에게도 아빠 폰 번호가 내 폰 번호라고 알려줬으며, 내가 폰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프로필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브, 이서와 리즈 그리고 장식까지 잔뜩. 하하하

물론 아빠는 내 친구들이 자꾸 전화하는 것을 귀찮아 하지만, 귀엽게 봐주고 계신다.

휴 ~ 다행이다.


어느덧 온 가족의 폰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다 깔아 두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것을 획득할지 모를 일이므로.


10살 인생, 가족들의 폰에 기생 중이지만 내 폰이 3개인 것처럼 뿌듯하다.




우리는 로또처럼 맞는 게 하나도 없으나, 교육관 하나는 일치한다.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하는 사교육은 거절한다.

스마트폰은 중학교 이후 아이의 학교생활에 필요하다면 제공 아니라면 최대한 제공을 늦춘다.

공부는 강요하지 않는다. 단,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고 숙제는 책임이라는 것 정도는 강조하고 있다.

우리 어릴 적엔 학교에서 숙제 안 하면 벌을 서거나 맞았는데, 맞아서라도 책임을 배웠는데 요새는 숙제를 하나 안 하나 페널티가 없다.


숙제는 학생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하지 않을 시 매를 맞는 것으로 규칙을 세웠다.

(그래도 잘 안 한다...)


자기의 동기를 찾도록 다양한 경험과 다독을 격려하는 편이다.

집 바로 옆 구립 도서관에서 하루 2시간씩 놀다 오기가 습관이 되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 창의력 그것은 어린 시절이 경험과 함께 읽었던 동화, 소설, 만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가까이, 글쓰기를 취미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간절히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나머지 집에 보이는 상자들로 스마트폰과 랩탑을 만들어 놓고 둘이 논다. 새로운 박스가 집에 들어올수록 그들의 폰과 랩탑은 버전 업이 된다.

이 모습이 짠한가?

난 기특하고 대단하다. 박스로 만들긴 했지만, 그들의 스마트 폰 안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

보기엔 허접해도 자기만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고 만든 것으로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귀여워 죽겠다.


물론, 한편으로는 남들이 다 가진 그것을 못 가져서 많이 속상하려나 하는 마음도 아주 조금 있지만 그럴 때마다 말랑말랑하고 건강한 아이들의 뇌를 생각한다.

엄마, 아빠 폰을 열심히 관찰하고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 내는 뇌.


어린이의 특권은 놀이라는 말에 동의하므로 눈과 귀 그리고 뇌를 무능하게 하는 스마트폰은 멀리해두고 싶다. 어른인 나도 쇼츠에 눈이 팔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까 그것의 중독성 그리고 허무함을 알기에...


꽤 긴 세월 동안, 지 아빠의 폰에 기생하며 지낸 둘째의 기생충 생활이 막을 내렸다.

친구들만 초대해야 할 멀티프로필에 실수로 나(엄마)를 추가하면서 들키고 말았다.

나는 한동안 남편의 프로필에 여자 아이돌 사진이 올라오는 것이 매우 요상했으나, 남편의 취향을 존중해 오다 어느 날 물었는데 금시초문이었던 남편의 치밀한 수사 끝에 범인을 검거하게 된 것.


우리가 생각한 방향과 전혀 다르게 어떻게든 집안에 있는 폰을 손에 넣으려고 머리를 쓰고 있었단 사실에 남편과 나는 웃고 말았다.


그녀는 또 다른 기회를 노릴 것이다. 기회가 온다면, 이번엔 더 교묘하고 더 정교하게.


to be continue.....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5화